ADVERTISEMENT

“팬데믹 끝났다, 독감 잡자”…SK바사, 국내 첫 세포배양 백신 재생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2일 SK바이오사이언스의 백신 생산기지 안동 L하우스. 이곳에선 다음 달 시작되는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을 앞두고 막바지 완제품 백신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기계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무진복·무진화·헤어캡·마스크 등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분주히 제품을 점검하고 있었다. 완제품에 라벨을 붙여 포장 용기에 넣고 밀봉해 박스에 담아 제조번호를 인쇄하기까지 전 과정이 거의 자동화돼 있지만, 국민 보건과 직결된 제품인 만큼 불량품 확인에는 사람의 개입이 필요해서다. 방문객들도 위생 가운에 헤어캡은 물론, 위생 덧신을 두 겹씩 착용하게 하고 곳곳에 손 세정제를 놓아두는 등 특히 위생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안동 L하우스에서 생산 중인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안동 L하우스에서 생산 중인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생산을 임시 중단했던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를 올해부터 다시 생산해 최근 국가 출하승인(시판에 앞선 최종 승인단계)을 획득하고 출하를 시작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201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정란 배양이 아닌 세포 배양 방식의 3가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를 개발했고, 2016년에는 세계 최초로 세포 배양 4가 백신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2020년 국내 독감 백신 점유율(31%) 1위를 달릴 정도로 시장을 장악했지만, 2021년부터 2년간 미국 노바백스·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등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에 집중하느라 독감 백신 생산을 멈췄었다. 코로나 백신이 더 급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생산 라인 전환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상균 L하우스 공장장은 “독감 백신 재생산을 위해 코로나 백신 생산에 투입됐던 기존 시설을 2개월간 새로 정비했다”며 “3년 만의 재생산이지만 노하우가 쌓여있어 원활히 재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올해 출하량 500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량) 생산을 거의 마치고 포장 작업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2년여의 공백에도 SK바이오사이언스의 자신감이 두둑한 것은, 스카이셀플루가 국내 기업이 만드는 유일한 세포 배양 독감 백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존 백신은 유정란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유정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오랫동안 사용된 안전한 방법이지만,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투여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생산과정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반면 동물 세포를 활용해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세포 배양 방식’을 사용한 백신은 계란 알레르기를 발생시킬 위험이 없고 변이 바이러스 발생 가능성도 작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유정란 백신보다 병원 방문 예방 효과도 11%가량 높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안동 L하우스에서 생산 중인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안동 L하우스에서 생산 중인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유정란이든 세포 배양이든 진행 과정은 유사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해당 연도에 유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이러스를 지정하면, 백신 제조사에서 해당 바이러스를 세포나 유정란 등에 배양·생산한 후 불활성화 공정을 거쳐 만든다. 3개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3가, 4개에 대한 제품은 4가다. 각 바이러스에 대한 원액을 만든 뒤 섞어 완제품을 만든다. 이때 각 생산 과정에서 항원의 적정 함량을 확인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 ‘항원 함량 실험’을 꼭 거친다.

이날 SK바이오사이언스는 품질관리(QC)실에서 완제품 출하를 앞두고 치러지는 항원 함량 실험 과정을 공개했다. 무진복과 고글 등으로 무장한 연구원들이 스포이드를 이용해 테스트 제품을 일일이 체크 중이었다. 이주섭 QC실 팀장은 “백신 원액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의 실험을 거친다”고 강조했다. 오랜 검증을 거친 유정란 방식에 비해 ‘젊은’ 백신이니 만큼 더욱 안전성 검증에 철저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백신 원액 보관 시설은 더욱 안전 점검이 철저했다. 방문객은 창문 너머로만 시설을 볼 수 있었고, 작업자들이 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 경고음 소리가 매우 크게 울렸다. 회사 관계자는 “작업자들에게 문이 열려 있다고 알려 닫힌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장 내부를 둘러보는 과정마다 무진화를 벗고 착용하길 반복하고 손을 씻어야 하는 등 절차는 까다롭게 진행됐다. 위생과 보안을 강조한 안전수칙 안내문도 곳곳에 붙어있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세포배양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세포배양 독감 백신 '스카이셀플루'.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코로나 백신 실적 감소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51% 감소(9290→4567억원)해 부진을 겪은 SK바이오사이언스는 스카이셀플루로 독감 백신 시장에서 1위를 탈환해 재기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그새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2년간 녹십자가 1위를 차지하며 세를 공고히 한 데다, 글로벌 업체 CSL시퀴러스도 뛰어들었다. 총 9개 업체(국내 6곳, 해외 3곳)가 11개 제품을 가지고 달려든 형국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에는 힘겨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이라며 “현재 말레이시아·태국 등 10개국에서 허가를 받은 것에 더해 10여 개국에서 추가로 허가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