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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병원 살린다"는 인제대 총장투표 1위 후보, 이사회에 막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모습. 뉴시스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백병원의 모습. 뉴시스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저보다 더 치열하게 현장에서 애쓴 구성원들에게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네요.”

23일 백진경(64) 인제대 멀티미디어학부 교수의 목소리에는 실망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이달 말 폐원을 앞둔 서울백병원을 살리겠다며 인제대 총장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전날 열린 이사회의 최종 선택을 받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이사회는 백 교수를 포함한 3명의 후보 중 전민현 현 총장을 제9대 총장으로 택했다.

백 교수는 백병원을 설립한 백인제 선생의 조카이면서 인제학원 이사장과 인제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고(故) 백낙환 박사의 차녀다. 백병원의 모체인 서울백병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백 교수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의외의 결과지만 많은 구성원들이 (나를) 지지해준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 후손 백진경 교수 “1위였는데…결과에 실망”

백진경 인제대 멀티미디어학부 교수. 사진 인제대

백진경 인제대 멀티미디어학부 교수. 사진 인제대

1차 선거인단 투표 최다 득표자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낙방했다.
이사회의 지난 6월 서울백병원 폐원 결정을 계기로 선거 두 달이 안 남았을 때 총장 선거를 갑자기 준비하게 됐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최종 1위였다. 받은 지지와 성원이 있는데 매우 실망스럽고 아쉽다.  
서울백병원 폐원을 왜 반대하나.

서울백병원은 인제대학교와 백병원의 발상지이고, 모체 같은 존재다. 서울백병원이 우리 기관 전체 브랜드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인제대 구성원 사이에서는 경제적 논리로만 생각한다면 인제대 김해캠퍼스에도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있다.

전날(22일) 이사회에 어떤 각오를 밝혔나.
서울백병원이 적자가 크지만, 상징적 의미가 있고 학교와 병원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먹히지 않았다. 

인제대 총장은 1차 선거인단이 3명의 후보자를 투표로 정한 후 이사회가 최종 결정을 내려 뽑는다. 직전 8대 총장을 뽑을 때인 2019년을 포함해 2위 득표자가 총장이 된 전례가 있다. 당시 백 교수 남편인 전병철 인제대 나노융합공학부 교수도 1차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고도 총장이 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총장 후보로 나섰던 교수 일부는 대학 이사회가 다수 득표자를 총장으로 최종 선출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폐원은 선친 뜻 아닐 것”

지난 7월 7일 오후 8월 말 진료 종료를 결정한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앞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현수막을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7일 오후 8월 말 진료 종료를 결정한 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앞에 폐원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현수막을 부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백병원은 후손인 백 교수에겐 뜻깊은 곳이라고 한다. 백 교수는 “병원 설립 전 부지에 큰할아버지(백인제 선생) 집과 할아버지 집과 우리 집이 다 같이 있었다. 병원을 짓고 커가는 과정을 고등학생 때까지 지켜봤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서울백병원 디자인실에서 실무를 시작했으니 제 반생(半生)이 그곳에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1988년 서울백병원에 디자인실을 만들어 20년 이상 운영해왔다. 99년부터는 인제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후손으로서 폐원 결정이 더욱 아쉬울 거 같다.  
큰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서울백병원을 사유 재산이나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백인제 선생이) 1946년 재산을 기부해 한국 최초의 민립 공익법인인 백병원을 만드신 것 아니겠나.  
앞으로 서울백병원은 어떻게 되나.
환자와 구성원들에게 죄송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남았으면 한다. 어디에 팔리는 건 모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 교수는 총장 선거를 준비하던 지난 16일 24년 전 서울백병원에서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프로그램으로 수술받은 한 환자에게서 감사 편지를 받기도 했다. 여기엔 “제가 살아있는 건 백병원 덕분이다. 폐원을 막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애쓰는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백 교수는 “이런 게 백병원이 가진 마음이라 뭉클했다. 백병원이 지닌 가치가 유지되기를 열렬히 염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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