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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장혁의 시선

책임으로부터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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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사회부장·변호사

임장혁 사회부장·변호사

고통·짜증·불편·비위생의 대명사로 전락한 잼버리는 끝났고 감사원의 시간이다. 책임을 묻는 단계다. 시중의 비난은 청소년 정책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김현숙 장관에게 꽂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가는 건 공동조직위원장이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관운이다.

감사원은 행사의 안전 유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등을 맡았던 행안부도 감사 대상에 올려놨지만, 이번에도 이 장관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행안부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이 된 건 지난 3월부터인데, 이 장관은 탄핵소추로 인해 2월 8일부터 직무가 정지돼 한창섭 차관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탄핵 기각으로 지난달 25일에야 복귀한 이 장관은 잼버리 대란의 절정에서 구원자처럼 새만금에 등장했다.

잼버리 책임 규명…결과는 ‘?’
‘죄 없으면 책임 없다’는 세계관
재난 계속돼도 고위직 건재 배경

이 장관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은 전화위복식의 타이밍 때문도, 그가 윤석열 대통령의 고등학교-대학교 후배라서도 아니다. 그것은 공직자 책임에 대한 윤 대통령 특유의 세계관과 행정이든 사법이든 권력행동의 책임 소재는 법관이 따져봐야 한다는 야당의 믿음이 결합해 낳은 기형적 결과다.

윤 대통령은 159명이 비명횡사한 이태원 참사 8일만에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는 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 장관 경질론을 띄우던 야권을 향한 일갈이었다.

이 말의 행간에선 두 가지 의미가 삐져나왔다. 엄청난 인명손실이 발생했다고 해당 영역을 관장하는 행정기관의 장에게 무조건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것. 그리고 책임이란 범죄혐의가 입증된 자만이 져야 한다는 것. 이 말대로라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건 발생 11일 만에,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4개월 만에 사퇴했던 것 등은 전근대사회의 잔재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의 이런 시각을 두고 야권은 “검사다운 발상”(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이라고 해석했다.

민주당은 즉각적인 탄핵 몰이로 맞섰다. 대통령과 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로 노하우를 축적한 과반 정당에게 장관 탄핵 소추는 식은 죽 먹기였다. 소추와 동시에 기각이 예견됐지만 사사건건 법관에게 “내 편 좀 들어달라”고 떼쓰는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 따위는 여의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결과는 이 장관의 화려한 복귀였다. 재난안전관리 주무부처의 장인 이 장관은 직무정지라는 민주당의 선물 덕에 오송참사와 예천 물난리에 대한 책임론마저 피해갔다. 지난달 25일 안전모를 쓰고 물난리 현장에 늠름하게 나타났다. 자칫 무리수가 될 뻔한 윤 대통령의 선택에 민주당이 기사회생의 드라마를 입혀준 셈이다.

‘죄 없는 자 책임도 없다’는 윤 대통령의 검사적 마인드와 ‘사법도 정치’라는 민주당의 선 넘는 인식이 맞선 6개월. 뭇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임이라는 개념에 조응하는 언행은 이 사회에서 사라졌다. 어떤 이들은 스스로도 차마 기대하지 못 했던 면죄부를 받았다. 재난안전법상 구조지원기관의 장인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등도 이 장관의 그늘 아래 언제 그런 위기가 있었냐는 듯 버티고 있다.

오송참사 관련자들 중 처벌 대상을 가리겠다고 시작한 검찰의 수사는 한달 째 “자료분석 중”이다. 결국 검찰은 일군의 실무자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해 ‘여러 사람의 부주의가 한 데 모여 비극을 낳는다’는 과실범의 공동정범 이론을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 사슬에 김영환 충북도지사와 이상래 행복청장까지 엮는 건 쉽지 않은 문제다.

이 청장은 오송참사 발생 1달여가 지난 22일 사과 한 마디 남기지 않은 채 교체됐다. 그러나 형사처벌 선상에서만 벗어난다면 윤 대통령의 책임관에 따라 면죄부를 손에 쥐고 어느 자리로 부활할지 모른다. 선출직인 김 지사는 말할 것도 없이. 나라 망신 잼버리에 대한 책임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동네북이 된 김현숙 장관조차 웃으며 돌아오지 말란 법이 없다. 잼버리에는 ‘전 정부 책임론’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작용하고 있어 김 장관에게 한층 유리하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사태가 벌어져 실무자들은 줄줄이 전과자가 되고 직업을 잃어도 최종 지휘자는 정치적 책임조차 지지 않는 상황. 그것이 자연스럽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고가 터질 때마다 대통령은 “근본적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자기 자리만 지켜낸 장들이 어떤 권위로 대책 마련을 지시할 수 있을까.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는 꼬리들은 어떤 사명감을 느낄 수 있을까. 두달 뒤면 할로윈의 악몽이 지난 지 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