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체 처리만 3천만원" 폭발 위험에도 상괭이 죽음 쫓는 수의사

중앙일보

입력

18일 이영란 플랜오션 대표가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에서 죽은 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18일 이영란 플랜오션 대표가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에서 죽은 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여기 골반이 보이죠? 상괭이가 원래 육상에서 살던 동물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흔적이죠. 바다로 오면서 뒷다리는 사라지고 골반만 남은 거예요.”

18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의 한 수산물 가공창고. 상괭이 사체를 부검하던 이영란 플랜 오션 대표가 작은 뼛조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해양생물 전문 수의사인 그는 15년째 고래 사체를 부검하고 있다. 이날도 그는 새벽에 전남 고흥과 부산의 해변에서 상괭이 사체가 연이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이곳으로 와 부검을 진행했다. 토종 돌고래로 알려진 상괭이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서해와 남해에 주로 서식한다.

18일 상괭이 사체를 부검하기 위해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로 옮기는 모습. 천권필 기자

18일 상괭이 사체를 부검하기 위해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로 옮기는 모습. 천권필 기자

발견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더운 날씨 탓에 사체에서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악취가 났다. 에어컨도 없는 부검실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그는 상괭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차분히 사체 이곳저곳을 살폈다. 곧이어 상괭이의 위에서 50㎝ 크기의 물고기가 소화도 되지 않은 채로 발견됐다. 이 대표는 “상괭이의 몸에서 이렇게 큰 물고기를 발견한 건 처음”이라고 놀라면서도 “큰 먹이를 사냥해 먹었을 정도면 죽기 직전까지 상괭이의 건강 상태가 나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8일 상괭이 사체에서 발견된 물고기. 천권필 기자

18일 상괭이 사체에서 발견된 물고기. 천권필 기자

한 시간 넘게 부검이 진행됐지만 결국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이 대표는 “혼획(어획 대상종에 섞여서 다른 물고기가 함께 잡히는 것)으로 인한 질식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도 “여름철이다 보니 너무 더워서 부패가 빨리 일어났고 많은 정보를 알 수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고래 부검해보니…혼획에 질식사, 쓰레기에 위 막혀

18일 이영란 플랜오션 대표가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에서 죽은 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18일 이영란 플랜오션 대표가 충남 태안의 한 수산물 가공 창고에서 죽은 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이 대표가 고래 부검의가 된 건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 고래가 점점 줄어드는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특히 상괭이는 자산어보에 ‘상광어(尙光漁)’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토종 돌고래지만 혼획과 오염 등으로 인해 개체 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국립수산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근해에 서식하는 상괭이 개체 수는 2005년 3만 6000마리에서 2016년 1만 7000마리로 절반가량 줄었다.

10년 넘게 고래 사체를 부검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제일 첫 번째는 왜 죽었는지를 아는 거지만 그거 말고도 (사체에는) 이 개체가 사는 바다에 대한 정보가 있어요. 지방층에 어떤 오염 물질 같은 게 있는지를 검사해서 바다가 지금 얼마나 깨끗한지 등 주변 바다 환경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거죠.”
상괭이. 국립생물자원관

상괭이. 국립생물자원관

상괭이 같은 경우에는 주로 어떤 이유로 죽나
“상괭이를 부검하면 질식사가 많이 나오는데요. 상괭이는 포유류라서 우리랑 똑같이 폐호흡을 해야 하고, 폐호흡을 하려면 물 위에 나와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물에 걸리면 숨을 못 쉬고 질식사하는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부검 사례는
“제주도에서 뱃머리 돌고래를 부검한 적이 있는데 얘네들이 위가 세 개 있어요. 그런데 첫 번째 위를 봤더니 거기에 한 1m 정도 되는 비닐 코팅된 종이가 있었고 거기가 막히면서 음식물 소화를 못 시켰어요. 그렇다 보니 오랫동안 먹이 사냥도 못 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사체 확보부터 처리까지 난관…“처리 비용만 최대 3천만 원”

2019년 제주에서 발견된 참고래 사체. 제주해경

2019년 제주에서 발견된 참고래 사체. 제주해경

고래가 대형 포유류이다 보니 사체를 구하는 것부터 부검 후 처리까지 난관이 적지 않다. 비용이 많이 들어갈뿐더러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부검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대표는 “부검을 마친 고래 사체는 의료 폐기물로 분류돼 소각 처리해야 한다”며 “예전에 제주에서 참고래를 부검한 적이 있는데 처리비로만 2~3천만 원이 들었다. 예산 지원이 없으면 고래 부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또 고래가 죽고 나면 지방층이 밀폐 용기 구실을 하기 때문에 부패 과정에서 내장에 메탄가스가 차서 폭발할 위험도 있다.

이런 난관에도 이 대표는 고래의 죽음에 대해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며 단순히 고래를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라도 부검 연구를 계속할 거라고 강조했다.

“부검을 통해 고래가 어떻게 살고 어떤 일이 있을 때 못 살게 되는지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싶어요. 우리가 같이 사는 바다에서 고래들이 왜 죽어가는지를 알아야 인간한테 올 수 있는 (위협을) 막을 수 있어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