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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시진핑의 위험한 원칙 “부동산 회사는 구제 안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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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위기는 교리를 초월하는 경향을 보인다(Crisis tends to go beyond any doctrine)!”

미국 억만장자 레이 달리오 브릿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업자의 말이다. 2022년 6월 기자와 화상 인터뷰한 자리에서다. 경제 위기 순간 어떤 정책 교리에 얽매이면 파국을 맞는다는 뜻이었다. 그가 든 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GFC)였다.

만기 5년짜리 우대금리 동결
부동산 대출 계속 막겠다는 뜻
위기 순간에도 ‘부채성장’ 혐오
‘중국발 금융위기’ 더 거세질듯

위안화 하락에 실물경제 흔들

시진핑

시진핑

달리오에 따르면 당시 미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투자은행을 위한 구제금융은 반시장적’이란 자유주의 정책 교리에 집착하다 위기에 빠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를 구제하지 않아 전면적인 위기로 번졌다.

역사가 복사하듯 되풀이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은 흔하다고 했다. GFC 이후 15년이 흐른 지금 중국에서도 정책 교리에 집착하다 위기 대응에 실패할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요즘 중국 경제가 위기 증상을 보인다. 국내총생산(GDP)이 약 18조 달러(약 2경4100조원)로 경제가 지지부진하다. 팬데믹 봉쇄 해제에도 중국인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수출도 시원찮다. 청년 실업률이 20% 정도나 된다. 미 달러와 견준 위안화 가치는 떨어져 달러당 7.3위안 선에 이르렀다. 2007년 말 이후 15년 최저 수준이다.

실물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자 약한 고리가 터지기 시작한다. 중국 집값이 올해 초 되살아나는 듯하다가 최근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부동산 개발회사인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자금난에 빠졌다. 헝다와 완다 그룹에 이어 세 번째 부동산 재벌의 위기다. 그 불똥이 중국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으로 번질 조짐이다. 신탁회사가 민가가 된 펀드의 자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그림자 금융은 비은행 투자펀드들이다. 부동산 시장의 자금줄 구실을 했다.

사정이 이쯤 되자, 서방 전문가들은 ‘중국발 부채위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세계적인 위기 전문가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프로젝트신디케이트 칼럼에서 “2008년 미국발 위기 이후 부채 위기가 유럽 재정위기를 거쳐 중국에 이르고 있다”며 “이는 부채의 수퍼 사이클”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중국의 금리정책은 효과 적어

그런데 중국의 대응이 과감하지 않다. 일요일인 지난 20일 인민은행(PBOC) 등 금융 정책·감독 당국자들이 모여 국유은행을 동원한 자금 지원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의 본격적인 대응을 기대하는 심리가 커졌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하지만 하루 뒤인 21일 PBOC가 예상과 달리 1년짜리 우대금리를 연 3.55%에서 3.45%로 0.1%포인트 조금 내렸다. 이 금리는 중국 금융시장에서 단기 가계대출이나 기업 운전자금 대출의 기준으로 쓰인다. 반면에 부동산 대출의 기준이 되는 5년짜리 우대 금리는 동결했다.

엿새 전인 15일엔 PBOC가 일주일짜리 역레포(RRP) 금리를 1.90%에서 1.80%로, 유동성 지원창구를 거쳐 나가는 1년짜리 자금의 금리를  2.65%에서 2.50%로 내렸다.

중국 금융시장 발전 단계에 비춰 돈의 가격인 금리를 조절한다고 해서 미국과 유럽만큼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진단이다. 영국 경제분석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CE)의 줄리언 에번스-프리차드는 최근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중국에서 금리정책은 정책 의지를 시사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리차드가 말한 대로라면 PBOC가 부동산 대출의 기준이 되는 금리를 동결한 것은 ‘시진핑(習近平)의 정책 교리가 지속함’을 내비친 셈이다.

시진핑, 100개 규제로 빚 억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빚을 늘려 이룬 경제성장을 죄악시했다. “특히 2020년 이후 차입 등으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새로운 법규 100여 가지를 도입했다”고 스티브 로치 예일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기자와 통화에서 말했다. 로치 교수는 이런 시진핑의 태도를 “금융을 죄악시하는 사회주의적 올바름(correctness)”이라 부르며 “그의 사회주의적 올바름이 PBOC 등에서는 정책 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로치 교수가 말한 사회주의적 올바름은 어떤 성별이나 인종 편견을 드러내는 말조차 금기시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란 미국식 정치용어를 떠올리게 한다.

시진핑의 정책 교리(사회주의적 올바름)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이 바로 헝다와 완다 그룹, 비구이위안 등 부동산 재벌이다. 이들 부동산 재벌은 2021년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진 이후 시진핑의 규제 때문에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그 바람에 수많은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거나 자금난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이 담당하는 주택공급 규모가 전체의 40%에 이른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최근 전했다. 중국 주택시장에 커다란 구명이 생긴 셈이다.

정책 교리가 우선, 유연성 사라져

그런데도 시진핑의 정책 교리 때문에 부동산 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금리는 동결됐다. “부동산 개발회사는 구제 대상이 아니다”는 신호다. 대신 부동산 위기가 다른 영역으로 전염되는 것은 긴급자금을 주입해 막겠다는 의지다. 폴슨이 2008년 유지한 완고함이 요즘 시진핑에게서 엿보이는 대목이다.

위기 순간 순발력과 유연성이 절실하다. 완고함은 위험하다. 실제로 폴슨의 완고함 때문에 이후 미국은 초대형 양적 완화(QE) 등 극단적인 유연성을 발휘해야 했다. 그 뒷정리를 하느라 미국이 요즘 정신없다. 교리를 초월하는 위기 순간 발휘되는 유연함이 저렴한 보험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