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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빼고 다 올라" "허리띠 졸라매야" 저소득층 한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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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호 11면

불편한 서울 버스요금 인상

서울시가 지난 12일부터 버스요금을 인상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서울 시내 한 버스에서 요금을 결제하고 있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가 지난 12일부터 버스요금을 인상했다. 사진은 지난 13일 서울 시내 한 버스에서 요금을 결제하고 있는 시민의 모습. [연합뉴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게 실감 납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직장인 장태영(31)씨는 최근 버스 요금 인상에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2일부터 인상된 서울 버스 요금 얘기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매일 반복되는 데다,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면 히루 중의 첫 지출인 이유로 물가 상승이 체감된다는 반응이다.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대학생 한모(23)씨는 “올리더라도 인상 폭을 조절했으면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거주지가 서울인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직장이 있는 서울 마포구로 출퇴근한다는 직장인 김지원(34)씨는 최근 버스 요금 인상이 더욱 서글프다. 성인·교통카드 결제 기준으로 시내버스는 1200원에서 1500원으로 300원 오른 반면, 광역버스는 2300원에서 3000원으로 700원 인상된 탓에 버스를 탈 때마다 체감되는 부담이 더 크다는 것이다. 김씨는 “똑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서울 사는 동료들에 비해 교통비가 더 올랐다”며 “그렇다고 서울에 집을 장만할 수도 없는 처지라 다른 비용을 아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자영업자는 어떨까. 지난 16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양손 가득 장을 보던 자영업자 김모(62)씨도 최근 버스요금이 오른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노상에서 음식 장사를 하기 위해 매일 장을 본다는 김씨는 “최근 식재료값 인상을 반영해 이미 음식 가격을 한 차례 올렸다”며 “교통비 부담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통비 인상이 비용을 전가할 수 없는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대중교통 요금의 역진성(逆進性)은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될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 주제다. 소득이나 자산과 상관없이 동일하게 부담해야만 하는 고정 비용인 탓에 소득이 적은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2015년 국토연구원에선 보고서를 통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인, 영세자영업자, 장애인 등에게 요금부담이 더 크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 교통부문의 소득 역진성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번 버스 요금 인상을 두고도 요금 인상을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8년간 버스 요금이 동결된 사이 적자가 누적됐다는 게 문제였다. 버스 업계에선 지난해 6582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뒀다간 향후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실제로 이번 요금 인상으로 2025년까지 감소할 운송적자 규모는 2481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번 인상 이후에도 당분간 적자 탈출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운송기관의 적자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민들 사이에선 출퇴근 등 반복 이용자를 위한 할인 혜택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서울 지하철 정기권처럼 버스 정기권을 만들어 출퇴근 등 정기 이용자 부담을 완화해 달라는 얘기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예산 문제로 당분간 현실화되긴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기권 등으로 할인을 해주더라도 누군가는 비용을 부담한다는 얘기다.

버스요금의 가파른 상승이 불편한 건 시민들만이 아니다. 정부가 최근 언급한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방침을 두고 환경단체들 사이에선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홍혜란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정부의 유류세 인하로 인한 혜택 규모는 9조원에 달한다”며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휘발유·경유를 많이 소비하는 고소득층과 정유회사에 이득이 된다”고 지적했다. 2021년 11월부터 연장되고 있는 유류세 인하 조치 대신 대중교통 요금에 혜택을 주는 게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중교통이 가진 공공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교통 혼잡이나 대기오염 등 사회적 비용 감소를 감안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는 지난해 여름 독일 정부가 판매한 ‘9유로 티켓’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독일 정부는 25억유로(약 3조55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9유로만 내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에너지 가격이 물가를 자극하자, 이를 완화시키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한 셈이다.

3개월간 진행한 무제한 티켓 실험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독일운송회사협회와 독일연방통계청 등에 따르면, 9유로 티켓은 물가상승을 0.7%포인트 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탄소배출량은 180만t 감소했고 23개 도시에서 교통 혼잡이 개선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상 밖의 성과에 고무된 독일 정부에선 올 들어 무제한 대중교통 티켓 정책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부터 3년간 49유로 무제한 대중교통 티켓을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은 15억유로(약 2조1300억원)가량이다.

정부의 대중교통 비용 지원 정책은 독일만의 사례가 아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스페인에선 지난해 9월부터 철도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미국 캔자스시티 등에선 지난 2020년부터 대중교통을 운임을 받지 않는다. 안성경 국회도서관 법률자료조사관은 “저소득층에게 대중교통 비용 최소화 정책은 사회·경제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지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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