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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전력 시찰한다며 피라미드로…여비도 횡령한 한전KP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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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전남 나주의 한전KPS 사옥. 사진 한전KPS

전남 나주의 한전KPS 사옥. 사진 한전KPS

정부 지침 위반, 업무와 무관한 관광지 방문에 여비 횡령까지…. 한국전력 계열사인 한전KPS에서 이뤄진 '나사 빠진 출장'의 일부다.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속 외유성 출장이 확인된 한전·한전KDN에 이어 한전KPS도 부적절한 출장 행태가 뒤늦게 드러났다.

17일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산업통상자원부·한전KPS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KPS 임직원 4명은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1년 10월~2023년 1월 이집트·미국·필리핀·인도 등 7개국을 4차례에 걸쳐 두세명씩 나눠 다녀왔다. 출장 목적으론 해외근무 직원 격려·지원 및 개선사항 파악을 내세웠지만, 사적인 관광 행보가 많았다. 예를 들어 2021년 11월 이집트에서 전력시설 시찰 등 공식 일정 대신 피라미드를 관람하는 식이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불요불급한 출장을 자제·연기토록 한 정부 지침을 어긴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4차례 출장 모두 피감 기관인 해외 지사·법인 등에서 제공한 차량(기사 포함)을 이용하는 등 부적절한 교통 편의도 받았다.

특히 해외 출장 과정서 한전KPS 직원의 여비 횡령까지 확인됐다. A차장은 B여행사와 공모해 해외 출장 직후 허위 청구서류를 제출받는 식으로 3회에 걸쳐 약 814만원의 여비를 빼돌렸다. 그 대신 여행사엔 리베이트(수수료) 약 137만원을 지급했다. 지난해 미국 출장 당시 여행사가 식비와 코로나 검사비를 지불한 것처럼 청구서를 꾸며 회삿돈을 지급한 뒤, 개인 계좌로 리베이트를 뗀 금액을 되돌려 받는 등의 방식이 활용됐다.

허위 서류가 오가는데도 회사 내부 확인은 소홀했다. 회계를 담당하는 C차장은 여비 지급 증빙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여행사에 그대로 잘못된 비용을 지급했다.

이집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 신화=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이집트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 신화=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지난 4~5월 이러한 비위 의혹을 감사한 산업부는 한전KPS에 엄중한 '기관 경고' 조치를 내렸다. 여비를 횡령한 A차장을 두곤 회사에 손해를 끼친 만큼 문책 등 중징계를 요구하는 한편, 신속한 수사도 의뢰했다. 관광 일정 등으로 부당하게 집행된 여비는 환수·정산토록 했다.

한전KPS 측은 "문제가 된 출장은 직원 격려 등 통상적인 업무 수행차 이뤄진 것"이라면서 "A차장의 횡령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 등 후속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 등도 제도 정비를 거쳐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2분기부터 9개 분기 연속 영업손실에 따른 한전의 누적 적자는 47조 원대에 달한다. 경영 환경 악화 등으로 고통 분담이 필요한데도 에너지 공기업의 불필요한 출장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3월엔 전임 한전 임원, 현직 한전KDN 임원이 각각 정부 지침을 위반하고 지사·법인 업무보고나 단순 현지 시찰 등으로 5차례(8개국), 7차례(14개국)씩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출장 경비 환수, 인사 자료상 결격 사유 명시 같은 후속 조치가 진행됐다. 특히 이종배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10월 아랍에미리트(UAE), 지난해 2월 미국에선 한전KPS를 비롯한 3개 기관 출장자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등 동반 일정에 나서기도 했다.

산업부가 산하 공공기관들의 해외 출장 실태를 점검하고 있어 향후 위법·부당한 사례가 추가로 나올 수 있다. 이종배 의원은 "최악의 적자 상황에서 한전 및 계열사 임원 등이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건 심각한 문제"라며 "이번 기회에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해외 출장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제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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