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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파트 지킨다” 94일째 농성하는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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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비구이위안(碧桂園). 베이징 현지 특파원에게도 낯선 단어가 최근 뉴스에 등장했다. 한자로 읽으면 벽계원, 푸른 계수나무 정원이란 뜻이다. 중국 5위 부동산 개발 업체명이다. 평화로운 이름과 달리 현실은 정반대다. 최근 비구이위안이 회사채 만기 이자 296억원을 갚지 못한 사실이 공개되며 부도설이 나돌고 있다. 자산 매각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이자를 못 갚을 정도라면 자금난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당장 상하이 증시에서 회사채 11종의 거래가 중지됐다. 여기에 돈을 빌려준 부동산 신탁회사들의 연쇄 도산까지 우려되는 상황. 이러다 중국발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진다.

지난 15일 베이징 비구이위안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분양자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성훈 특파원

지난 15일 베이징 비구이위안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분양자들이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성훈 특파원

지난 15일 베이징 퉁저우구에 비구이위안이 건설 중인 아파트를 찾아갔다. 멀리서도 ‘저 아파트구나’ 싶었다. 타워크레인이 전부 멈춰 있었다.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공사장 출입문은 굳게 닫혔다. 취재진을 보고 달려 나온 경비원들이 어서 나가라고 몰아쳤다. 주위를 둘러보다 뜻밖의 현장을 목격했다. ‘권리를 지키자-94일째’ 승합차 옆에 붉은 현수막이 나부꼈다. 그 뒤로 대형 천막에 텐트까지. 공사 중단에 항의하는 비구이위안 분양자들의 장기 농성 현장이었다. 중국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 비구이위안의 자금난은 이미 중국인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었다. 이달 초 폭우에도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한국 기자임을 밝히고 취재가 가능한지 물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비구이위안을 아느냐며 관심을 가져주는 데 고마워했고 자발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장기 농성 현장도, 언론에 적극적으로 말을 하겠다는 중국인을 만난 것도 특파원 생활 중 거의 처음이었다. 그들은 “회사 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공기 지연, 재산 가치 하락에 대한 대책을 물어도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역 정부 관계자와 공안이 찾아와 회사 측이 문제없이 처리하기로 했다,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도 된다고 했지만 정작 회사 측이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아 이렇게 돌아갈 수 없다.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시위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현장의 민심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한 분양자는 “비구이위안이 (중국) 언론에 하는 얘기는 좋은 말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도 믿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이는 같은 피해자가 “최소 2만 명은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비구이위안의 올 상반기 순손실 예상액은 무려 550억 위안(약 10조원)이다. 이런 현장은 얼마나 더 많을까. 부동산 경기 침체가 중국을 잠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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