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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광복의 완성은 통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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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광복 78주년을 맞았다. 한 사람의 일생쯤 되는 기간에 우리는 엄청난 성취를 거두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서유럽과 견줄만한 고소득국이 되었다. 민주화도 이루었다. 서양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배우겠다며 유학 올 정도다. 필자 세대가 학창 시절 암송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이제 완성한 것 같다. 그러나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빠진 듯 마음이 허전하다. 바로 남북 분단과 대립, 그리고 북한 주민의 고통 때문이다. 통일 없는 광복은 완전할 수 없다.

광복은 통일 없인 완성될 수 없어
리더는 소명과 지식으로 길 열고
통일부는 종합적 실행 역량 갖춰
비핵화→통합→통일을 견인해야

분단 없이 하나의 나라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다면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떠할까. 영국, 프랑스에 필적하는 경제 규모에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국가로 이미 G7에 들어갔을 법하다. 그것도 20세기 전반에 식민지였던 나라가 단기간에 이룩한 성취이니만큼 개도국에 큰 영감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은 미완성 한국의 상징으로 세계에 각인됐다. 또 북한발 위험요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이다. 특히 북핵 고도화와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의 증가로 이 위험은 훨씬 커졌다. 이처럼 분단은 우리의 발전을 제약하고 한국이 마주할 리스크를 증폭시킨다. 이런데도 지금 같은 분단국가로 계속 남자는 주장이 타당할 수 있을까.

분단을 극복하자고 하면 통일비용을 염려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우리 국민의 비중은 2007년의 64%에서 2022년 46%로 2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통일비용이 주된 이유다. 그러나 이는 통일로 가는 더 좋은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통일의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독일통일과 같은 급진통일이다. 둘째는 유럽연합(EU)과 같은 경제통합을 거쳐 이루어지는 점진통일이다. 만약 갑자기 통일이 일어나면 막대한 비용을 피할 수 없다. 소득 격차가 극심한 두 나라가 바로 한 국가로 합쳐지면 빈국 주민의 생계 보조를 위해 부국의 세금 부담이 급증한다. 그러나 경제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두 나라의 소득 차이가 상당히 줄어든 다음 통일하면 통합의 편익으로 부국 주민의 소득도 순증(純增)한다.

최선의 통일 경로는 ‘비핵화→경협→통합→통일’이다. 이는 개인의 후생과 국익을 증가시키며 평화에 기여한다. 우리나라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점진통일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이전 보수 정부는 공식적인 방안을 도외시한 채 급진통일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고, 통일비용에 대해선 희망 섞인 낙관론, 통일 후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선 준비가 필요하다는 당위론만 내세웠다. 이런 내용 없는 맹탕은 정책이 될 수 없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최선의 통일방안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되 급진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하나의 수단만으로 이룰 수 없다. 제재, 압박, 억지, 대화, 교류, 경협, 지식공유 등의 정책 수단을 시나리오별, 단기·중기·장기별로 이어 맞춰야 하고 단계마다 기어를 바꾸듯 변화시켜 가야 한다. 금융투자처럼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각각의 투자 비중을 여건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 통일부의 역할은 이 포트폴리오의 준비와 실행, 조정이다. 우리 정부엔 경제나 사회 분야처럼 일상적인 과제가 주어진 부처가 많다. 그러나 국방부나 소방청처럼 사고 대비가 주목적인 ‘플랜 B’ 부처도 존재한다. 지금의 비핵화 단계에선 통일부는 ‘플랜 B’ 부처에 가깝다. 이 기간에 통일부는 남북 대화나 교류 협력이 재개될 국면을 준비하는 동시에 통합과 통일을 바라보면서 정책을 개발하고 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지도자는 통일부 역할의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비핵화는 외교부, 안보는 국방부가 주무 부처이고, 북한 분석은 정보기관이 더 잘한다고 생각하면 통일부의 역할이 미미해 보인다. 그러나 앞의 부처들이 특정 부문의 전문가라면 통일부는 제너럴리스트다. 지금 같은 복합위기와 변동성의 시대에는 통일의 모든 수단과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종합하는 탁월한 제너럴리스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런 제너럴리스트는 단기간에 길러지지 않는다. 지금의 국면이 언제 바뀔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모든 경우를 대비한 준비는 리더의 당연한 의무다.

지난 정부들의 축소 지향적 대북정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통일부도 부처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 한다. 경협이나 종전선언을 비핵화 앞에 두려던 이전 시도가 그 예다. 북한 문제와 통일의 복합성을 무시한 채 대북정책에 하나의 마스터키가 있는 것인 양 착각하면 또 실패한다. 조용한 상황에서도 움직임을 간파하고 격랑 가운데서도 목적지를 잃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무슨 통일 같은 소리냐’며 회의론이 득세할 때 소명의 정치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길을 찾아 나선다. 통일이 소명인 지도자,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그 복합성에 대한 지적 이해를 갖춘 지도자만이 광복을 완성할 수 있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