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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홍의 시선

현실화하는 중국 리스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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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중국 경제가 위태롭다. 중국 최대 민영 자산관리 그룹 중즈계(中植系) 계열 국유기업 중룽(中融)신탁이 부동산 투자 실패로 3500억 위안(약 64조원)대의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다. 중국 5위 부동산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도 상반기 순손실이 550억 위안(약 10조원)으로 예상되며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겪고 있다. 대형 부동산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와 완다(萬達)그룹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시장 위축으로 중국 경제는 앞날이 불투명하다.

부동산 등 중국 경제 위기 조짐
이념 앞세운 정책에 기업 외면
한국, 원칙 지키며 우호 중시를

외신들은 중국 경제에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달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했다.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4.4%로 뒷걸음쳤다.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줄이며 지난 6월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21.3%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대외 환경도 녹녹하지 않다. 미국은 과거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권위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건설적 관여’에 나섰다. 그 기대가 어긋나며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맞춤형 봉쇄’로 전환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사사건건 대립하며 진영 대결을 벌이지만 중국이 비자유주의에 기초한 공세적 외교안보 전략을 펼친다는 인식에는 초당적으로 합의하고 있다. 2021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칩4(한·미·일·대만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쿼드(미·일·호주·인도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 미·영·호주 외교안보협의체) 등 동맹국과 우방을 동원한 대중국 포위망은 굳건해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 등 서방의 공세에 공산주의 이념 강화로 맞서고 있다. 2022년 10월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을 버리고 공산주의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는 실용보다 사상을 중시하는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을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꾼다.

그러나 공산당 일당독재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정책을 펼치기 힘들다. 시 주석은 공산당 일당독재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알리바바 등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를 탄압했고, 사교육·게임산업 등을 단속하고 있다. 최근 경제가 부진하자 중국 정부는 빅테크 규제를 풀고 플랫폼 산업 지원 의사를 밝혔으나 기업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옛 소련과 동유럽 몰락에서 보듯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실패했다. 시 주석의 이념 공세도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교수와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공저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원제 Danger Zone)는 중국이 이미 정점을 지나 하락기에 접어들었고, 더 쇠퇴하기 전에 패권을 차지하려고 미국과 무력 충돌을 불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성공 요인이었던 지정학, 개혁개방 정책, 인구 배당 효과, 풍부한 자원이 미국의 견제 등으로 적대적으로 바뀌면서 성장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한때 강력하게 상승했던 후발 패권국이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다른 방법으로는 경쟁국을 따라잡지 못할 때 전쟁을 일으킨다는 게 저자들의 인식이다. 1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이나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그런 사례라고 설명한다. 시 주석이 무력을 동원해 대만을 통일하려 한다면 미국도 이를 방관할 수 없어 세계적 파문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중국 리스크는 한국에 엄청난 도전이다. 세계 1위 상품 소비국인 중국의 위기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코로나 봉쇄 해제 이후 중국 경제 활동 재개의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중국 부동산 위기에 따른 디플레이션 공포로 한국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 경제 부진을 직시하고 이를 대체할 수출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하고 반도체 등의 기술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조치가 필요하다.

패권 도전과 관련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단결해 중국의 대만 침공이 중국의 이익이 아니며 침공을 감행할 경우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알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의 우호·선린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원칙은 일관되게 지키는 게 최선이다.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중국에 맞서 3국 합동군사훈련 정례화와 3국 정상회의 연례화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한국은 미·일과의 연대 강화와 함께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유럽연합(EU)·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인도·호주 등과의 협력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