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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급증한 채무조정 신청, 금융 취약계층 관리 나서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금융위원회는 10일 이세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주재로 기재부, 한국은행, 금감원 등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는 10일 이세훈 금융위원회 사무처장 주재로 기재부, 한국은행, 금감원 등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금융위원회

생활고 등으로 인해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해 채무조정(신용회복)을 신청하는 사람이 올해 들어 크게 늘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신호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채무조정 신청은 9만1981명으로, 지난해 전체 신청자(13만8202명)의 70%에 육박한다. 특히 30일 이내 단기 연체자가 연체이자를 감면받고 상환 기간을 연장하는 신속채무조정(연체 전 채무조정)이 급증, 상반기 신청자 수(2만1348명)가 이미 지난해 전체 신청자(2만1930명)에 맞먹는 수준이다. 신청 건수뿐 아니라 갚는 데 걸리는 기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8년 평균 84.6개월이던 채무 변제 기간은 점점 길어져 올 6월 말 기준으로 100.5개월까지 늘었다. 100개월을 넘어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소액대출 연체도 문제다. 소액대출은 채무조정 기간 중 빚을 성실하게 갚아나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원되는데, 이 연체율 역시 2018년 6.7%에서 6월 현재 10.9%로 크게 올랐다. 채무 탈출을 위해 착실히 빚을 갚아 오던 사람들마저 한계에 내몰린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결국 취약층 전반의 대출 부실이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더딘 경기 회복 탓에 벌이는 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나가는 돈은 크게 늘면서 취약층의 고통이 점차 가중되는 구조다. 지난 12일 서울 버스요금이 8년 만에 300원 오른 것을 비롯해 지난해 여름 이후 전기요금이 ㎾h당 28.5원(20.8%)이나 가파르게 오르는 등 공공요금이 연이어 올랐다. 물가상승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 서민 가계로선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지속되는 고금리 기조는 안 그래도 빚 갚을 여력이 부족한 취약층의 실질소득을 갉아먹는 또 다른 위험 요소다. 한국은행은 올 1월 기준금리를 3.5%로 인상한 것을 마지막으로 4회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이 7%에 육박하는 등 시중금리는 꾸준히 오르는 추세라 적잖은 국민이 늘어난 이자를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기준금리가 지난해 1월 1.25%에서 1년 만인 올 1월 3.5%까지 오르면서 가계가 추가로 떠안은 이자 부담만 37조원에 달한다.

경기가 좀처럼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와중에 교통비와 가스·전기요금 인상, 여기에 고금리까지 맞물리면서 금융 취약층은 허리띠를 졸라매도 빚조차 갚기 어려운 국면이다. 정부가 취약층을 보듬는 보다 세밀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