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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민근의 시선

언제까지 민간에 손 벌릴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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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조민근 경제산업디렉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막을 수 있을지….”

지난날 만난 시중은행장 A의 얼굴엔 걱정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당시 5대 시중은행은 ‘새마을금고 구하기’에 투입된 상태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이 불거지며 새마을금고의 연체율은 6%대까지 급등하면서다. 불안이 커지며 일부 점포에선 뱅크런(대량인출사태) 조짐까지 나타났다. 다급해진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소방수로 호출했다. 시중은행들은 새마을금고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대규모 자금을 수혈했다. 이어 새마을금고 예금을 사실상 전액 보장하겠다는 이례적 선언이 나오고서야 불안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PF 부실에 중소형 증권사들이 흔들릴 때 대형 증권사들이 나섰던 것과 거의 판박이식 대응이다.

감독 사각 새마을금고 부실 사태
불길 번지자 시중은행 투입 진화
민간 동원 잼버리 대응도 닮은꼴

A는 당장 급한 불 끄기에만 신경쓰는 듯한 당국의 대응에 아쉬움을 표했다. “일단 다 살리고 보자는 분위기 속에 부실 사업장을 솎아내는 작업이 뒤따르지 않으면 시장 정상화되긴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려는 곧 개탄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증권사발 쇼크로 채권 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도 증권사 PF 담당 임원들이 고액의 성과급을 따박따박 챙겨갔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면서다.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은 그제서야 실태 점검에 나섰다. 실제로 22개 증권사가 지난해 부동산 PF 관련 임직원에 뿌린 성과급은 3525억원으로 집계됐다. 위기의 와중에 자금 지원까지 받은 증권사 네 곳도 770억원의 보너스를 쥐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얘기다. PF에서 뻔히 손실이 생겼는데도 이를 성과보수에 반영하지 않은 곳들도 적발됐다. 중소형 증권사 PF 담당 임원 중에는 3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보수를 받아간 이들도 있었다. 웬만한 금융지주 회장 연봉을 훌쩍 넘어선다. 연초 금감원장은 물론 대통령실까지 나서 시중은행의 성과급 잔치를 질타했던 게 무색해질 정도다.

따지고 보면 부동산 PF가 한국 경제 최대의 뇌관이 된 것도 이런 도덕적 해이를 미리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 수익이 실현되려면 보통 수년 이상이 걸린다. 그 과정에 수많은 리스크도 잠재해있다. 하지만 고액의 성과급을 노리는 이들은 보통 이런 리스크는 감추고, 예상 수익은 최대로 부풀려 실적에 반영하려 한다. 나중에 부실이 생겨도 손해는 회사나 금융상품 가입자가 감당한다. 이번처럼 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때는 정부는 물론 시장 참가자들이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 전형적인 ‘수익의 사유화, 위험의 사회화’다.

이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적에 투자위험을 충분히 반영하고, 성과급도 한번에 주는 대신 주식 등으로 3년 이상 장기에 걸쳐 나눠주라고 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상당수 증권사가 이를 어기고 현금을 바로 꽂아줬다. 특히 상대적으로 감시의 눈길을 덜 받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단기 실적과 보상을 위해 PF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증권사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5.9%까지 뛰어오른 상태다.

행정안전부 관할인 새마을금고는 아예 금융당국의 감시망 밖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느슨할 수 밖에 없는 관리감독 체계 아래 무분별한 대출은 물론 횡령·배임 사고도 빈발했다.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빈발했지만 행정부 내 강고한 관할권의 논리를 넘어서진 못했다.

전 국민을 걱정하게 만든 잼버리 부실 운영 사태도 이와 겹쳐 보인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정원 300명에도 못미치는 소규모 조직이다. 게다가 부처 폐지가 공언된 상태다. 장관의 호언장담과 달리 대규모 행사를 제대로 준비하고 관리하기엔 경험도, 능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은 금세 드러났다. 전라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행사 준비보다 예산 확보와 사회간접자본(SOC) 유치라는 ‘젯밥’ 에 관심있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른다. 국가 이미지 추락 위기 속에 결국 대학, 은행과 대기업까지 나선 뒤에야 상황은 겨우 수습됐다.

잼버리 파행이나 새마을금고 뱅크런, 모두 급한 불 껐다고 어물쩍 넘길 일은 아니다. 한덕수 총리 표현대로 분석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정부의 힘만으로 수습이 안돼 민간에 손내미는 면구스러운 상황이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정치권에선 ‘전 정부 탓이냐, 현 정부 탓이냐’는 공방만 한창이다.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던 삼성 이건희 회장의 28년전 쓴소리가 기자에게만 새삼스럽게 들리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