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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치카' 최재형 부부, 순국 103년만에 고국 땅에 함께 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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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불린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와 고국 땅에서 만나 영면에 들었다. 1920년 최 선생이 러시아에서 일본군에 의해 순국한 지 103년만이다.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거행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여사의 부부 합동안장식에서 국방부 의장대가 영현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거행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여사의 부부 합동안장식에서 국방부 의장대가 영현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보훈부는 14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백 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란 슬로건 아래 최 선생 부부의 합장식을 거행했다. 이날 합장식은 최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흙과 70여년간 키르기스스탄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부인 최 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함께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최 선생은 ‘페치카’로 불렸다. 러시아어로 ‘난로’라는 의미로, 평생 독립운동에 투신하며 시베리아 동포들을 돌봐줬던 그의 인생을 상징하는 말이다.

최 선생은 9살이던 1869년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해 자수성가해 모은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기꺼이 내놨다. 1907년 연해주로 건너온 안중근 의사가 “집집마다 최재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그는 시베리아 동포들의 ‘대은인’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일본군은 1920년 최 선생이 지원한 무기를 바탕으로 치른 청산리ㆍ봉오동 전투에서 패한 이후 우수리스크를 급습해 최 선생을 즉결 처형했다. 이 과정에서 최 선생의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이후 최 선생의 부인 최 여사는 자본가의 가족이란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돼 어려운 가운데서도 안중근 의사의 남은 가족까지 돌보다 1952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홀로 잠들었다.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거행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여사의 부부 합동안장식.연합뉴스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거행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최 엘레나 여사의 부부 합동안장식.연합뉴스

이날 최 선생 부부가 영면에 든 108번 묘역에는 1970년 최 선생의 가묘가 조성됐던 적이 있다. 당시 후손을 자처하는 이가 나타나면서 건립된 가묘였다. 그런데 1990년 최 선생의 유족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당초 후손을 자처했던 사람은 유족연금을 노린 가짜였음이 탄로났다. 이후 최 선생의 가묘가 있던 108번 묘역은 멸실된 상태로 방치돼왔다.

최 선생의 유족들의 오랫동안 멸실된 묘의 복원을 희망했지만, 이번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안장할 수 없다’는 국립묘지법 규정이 최 선생의 안장을 가로막았다. 이날 합장은 보훈부가 윤석열 정부 들어 유골을 찾을 수 없을 경우 배우자의 유골과 합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끝에 이뤄질 수 있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날 추모사에서 “최재형 선생님과 같이 일신을 독립운동에 바치시고 그 곁에서 내조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신 분들이 있어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며 “이제 대한민국이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부부합장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부부합장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보훈부는 이와 함께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 강점기 한ㆍ영 연합작전을 도왔던 미국인 선교사 프랭크 얼 크랜스턴 윌리엄스 선생과 기생 신분으로 만세 시위를 주도했던 함복련 선생 등 100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건국포장을 받는 윌리엄스 선생은 1908년 미국 선교사로 입국해 충남 공주에서 영명학교를 설립한 후 1943년 인도 전선에서 한국광복군 인면(印緬ㆍ인도와 미얀마 줄임말)전구공작대 대원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한국 독립의 불씨를 살리고자 애썼다.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는 영국군 산하 인도전구선전대(IFBU)에 투입돼 선전 활동을 벌였다.

대통령 표창을 받는 함복련 선생은 18세이던 1919년 4월, 동료 기생 6명과 함께 경남 통영의 중심부인 부도정 장터에서 만세 시위에 앞장서 옥고를 치렀다.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신분인 기생의 만세 시위는 3ㆍ1운동의 열기가 통영 전역에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제78주년 8·15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합동 안장식에서 최 선생 부부의 영현이 모셔지고 있다. 뉴스1

제78주년 8·15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합동 안장식에서 최 선생 부부의 영현이 모셔지고 있다. 뉴스1

보훈부는 “3ㆍ1운동이 나이와 계층을 불문한 거족적 독립운동이었음을 보여준다”며 “특히 통영은 기생ㆍ상인ㆍ어민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역으로 알려져 선생의 포상이 더욱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30명(애국장 8ㆍ애족장 22), 건국포장 5명, 대통령표창 65명 등이다. 포상자 가운데 생존자가 없어 이들에 대한 건국훈장ㆍ포장과 대통령표창은 15일 광복절 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에서 후손들에게 수여된다.

오성규 애국지사가 13일 오후 서울현충원 김학규 광복군 제3지대장 묘역에서 환국 신고와 참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성규 애국지사가 13일 오후 서울현충원 김학규 광복군 제3지대장 묘역에서 환국 신고와 참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광복절 경축식에는 전날(13일) 영구 귀국한 오성규 지사(100)도 귀빈으로 참석한다. 오 지사는 일본 내 마지막 생존 애국지사로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활동했고, 광복 후엔 교민 보호에 헌신하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오 지사의 영구 귀국은 "생의 마지막 순간은 조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오 지사의 뜻에 따라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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