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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정상 '노 타이'로 만난다…사진 한 장 '역대급' 메시지 [3국 정상회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는 18일 첫 단독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캠프 데이비드. 중앙 포토

오는 18일 첫 단독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캠프 데이비드. 중앙 포토

정상 간 외교 행사에서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건 외교가의 공공연한 속설이다. 오는 18일 한ㆍ미ㆍ일 정상회의는 더 그렇다. 3국 정상이 처음으로 단독으로 모이는 데다 정례화까지 선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노 타이'로 찍을 편한 사진 한 장이지만, 그 자체로 어떤 말이나 글보다도 강력한 대북·대중·대러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대통령의 정상회의는 이번이 네 번째다. 5년 임기 동안 1~2차례의 한ㆍ미ㆍ일 정상회의에 임하는 데 그쳤던 역대 정부와 비교하면 윤석열 정부는 2년 차에 벌써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갈수록 뚜렷해진 '케미'

앞선 세 차례의 한ㆍ미ㆍ일 정상회의 사진을 눈여겨보면 1년여 만에 급속도로 가까워진 3국 관계 변천사가 그대로 보인다.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였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3국 정상회의에선 세 정상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지만, 표정은 다소 경직됐다. 한·미 정상은 같은 해 5월 정상회담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전날 스페인 국왕 갈라 만찬에서 잠시 만난 게 전부였던 데다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었다.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뉴스1

지난해 6월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뉴스1

지난해 11월 3국 간 '프놈펜 성명'을 도출해낸 캄보디아 프놈펜 정상회의에선 세 정상 모두 훨씬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공식 협상을 위해 배석자가 자리하느라 삼변으로 된 긴 테이블에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았지만 표정은 밝았다. 당시 3국 정상은 북핵 문제, 역내 안보, 경제 협력과 관련해 역대 가장 포괄적인 수준의 합의를 이뤄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뉴스1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뉴스1

그리고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 세 정상은 둥글게 밀착해 서서 활짝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단 5분의 시간이었지만, '케미'는 가장 좋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ㆍ일 정상을 미국으로 초청했고, 정상 사이에 편안한 스킨십도 오갔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뉴시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만난 한·미·일 정상. 뉴시스

이번 회의를 앞두고 참모들 사이에선 윤 대통령의 '인간미'를 제대로 보여줄 최적의 세팅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대통령은 겉으로 드러나는 강한 이미지와 달리 사실 따뜻하고 정이 많은 성격"이라며 "방미 때 팝송 '아메리칸 파이'를 직접 불러 호응을 얻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을 드러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주석단 위 북·중·러' 바로 상쇄

실제 캠프 데이비드에선 세 정상 모두 넥타이와 양복이 아닌 캐주얼 차림으로 만나 산책 등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전망이다. 복장은 편하지만, 회동 그 자체가 주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특히 이는 지난달 말 북한 열병식 주석단에 북ㆍ중ㆍ러 고위급 인사가 나란히 선 이미지의 잔영을 곧바로 상쇄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각종 불법 무기 퍼레이드를 내려다보며 귓속말을 주고받는 '불량 국가' 지도자의 사진과 산속 별장에서 자연을 배경으로 협력을 다지는 '민주주의 국가' 정상의 사진은 대비될 수밖에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 70주년인 지난달 27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 등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 70주년인 지난달 27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 등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불편한 관계도 사진에 고스란히

과거에도 3국 정상이 만나는 사진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했지만, 항상 화목한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처음 만난 2017년 7월 촬영된 기념 사진은 3국 정상이 굳은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 연합뉴스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 연합뉴스

당시는 북한이 역대 최악의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던 시기로, 3국 정상회의 최초로 대북 규탄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회의 직후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남북 회담을 제안하고, 미ㆍ일 측에선 "3국이 모여 합의했던 것과 다르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런 동상이몽이 어색한 사진에서도 드러났던 셈이다.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난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 청와대 사진기자단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난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부터) 청와대 사진기자단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 간 갈등이 심각했던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3국 정상회의 기념사진을 두고선 일본 내에서 "굴욕적이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아베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갑스무니다"라며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지만, 박 대통령은 눈길도 주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중재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앞에서 한·일 정상이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도 있었지만, 더 회자된 건 갈등이 부각된 사진이었다.

이번 한ㆍ미ㆍ일 정상회의는 개최 타이밍도 적절하다는 평가다. 다음달부터 유엔 총회, 주요 20국(G20)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굵직한 이벤트가 줄을 잇는 '다자외교의 계절'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굳이 별도의 정상회의를 또 하지 않더라도 이번 캠프 데이비드 회의에서 보여주는 3국 정상 간 사진 한 컷의 강력한 지속 효과가 향후 다자회의에서 3국 정상이 마주칠 때마다 꾸준히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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