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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DNA’ 편지로 감사 받는 교육부 공무원 “경계성 지능 때문에”

중앙일보

입력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모습. 뉴스1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모습. 뉴스1

지난해 자녀의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한 교육부 공무원 A씨가 13일 “‘경계성 지능’을 가진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사과문을 냈다. 경계성 지능은 지적 장애에 해당하진 않지만 평균 지능에 미치지 못해 경계선(IQ 70~85)에 속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날 사과문은 지난 10일 초등교사노조가 의혹을 폭로한 뒤 당사자인 A씨가 처음으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초등교사노조는 “A씨의 신고(방임 및 정서적 학대)로 초등학교 2학년 교사가 직위해제 당하고 4개월 간 고초를 겪었다”며 그가 담임 교사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 등 교육부 공무원의 교사에 대한 ‘갑질’이 의심 되는 표현이 담겨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신고를 당한 교사는 경찰의 무혐의 결정으로 지난 2월 복직했다. 이후 교사는 A씨를 교권보호위원회에 회부했고, 위원회는 A씨에게 서면사과와 재발 방지를 권고했다.

“발달 느린 아이, ‘왕의 DNA’는 치료 기관 자료”

A씨는 사과문에서 “발달이 느리고 학교 적응이 어려운 아이가 학교 교실에 홀로 있었던 사실, 점심을 먹지 못한 사실, 반 전체 학생이 우리 아이만을 대상으로 나쁜 점, 좋은 점을 쓴 글이 학교 종이 알리미 앱에 올라간 사실을 안 순간 부모로서 두고만 볼 수 없었기에 학교 측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교육부 공무원 A씨가 자녀의 담임교사 B씨를 상대로 아동학대로 신고해 직위해제까지 이어진 사안이 논란이 됐다. 편지는 해당 공무원이 B 교사 후임으로 온 C 교사에게 보낸 편지. 전국초등교사노조 제공

지난해 11월 교육부 공무원 A씨가 자녀의 담임교사 B씨를 상대로 아동학대로 신고해 직위해제까지 이어진 사안이 논란이 됐다. 편지는 해당 공무원이 B 교사 후임으로 온 C 교사에게 보낸 편지. 전국초등교사노조 제공

반면, 노조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학생을 교실에 둔 것은 수업 방해와 다른 학생들에 대한 폭력 행사로 지도가 필요한 상황에서 여러 차례 설득에도 완강히 거부해 분노 발작이 일어날까봐 이동시킬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알리미 앱’에 올린 문서에 대해서는 “해당 교사가 상담 자료로 활용할 목적으로 수집했으며 업로드 후 2시간만에 삭제했다”며 “해당 앱은 학부모들만 접근할 수 있어 학생에 대한 따돌림을 의도한 것이 전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A씨는 사과문에서 교사에게 보낸 편지에 쓴 ‘왕의 DNA’라는 단어에 대해 “제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 아니라 치료기관의 자료 중 일부”라고 해명했다. 일부 치료 기관이 자폐아나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왕의 DNA를 가진 아이’라고 표현하며 치료 및 소통 방법을 제시하는 자료를 인용했다는 취지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A씨의 신고로 기존 교원이 직위해제된 이후 새로 온 담임 교사였다. 당시 편지에는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말해도 알아듣는다” “하지 마, 안 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 철저히 편들어달라” “칭찬은 과장해서, 사과는 자주, 진지하게 해달라” “인사를 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하게 강요하지 않도록 해달라” 등의 내용이 담겼다.

A씨는 “교장 선생님과 상담 중 제가 우리 아이의 치료를 위해 노력한 과정을 말씀드렸더니 관련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새로운 담임선생님께 전달해드렸다”며 “전후 사정의 충분한 설명 없이 메일로 자료를 전달했으니 황당한 요구로 불쾌하셨을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교육부 공무원의 직위를 활용한 협박성 발언을 한 적은 없다고도 했다. 그는 “저의 직장과 제가 6급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말씀 드린 적은 없다. 그래서 저의 직업이 선생님에게 협박으로 느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며 “혹여나 진행 과정에서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실수가 있었다면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노조가 공개한 교권보호위원회 결정서에 따르면 A씨는 ‘왕의 DNA’를 언급한 편지 등을 공직자만 쓸 수 있는 통합메일 시스템으로 보냈다. “간접적으로 공무원 신분을 드러낸 것”이라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A씨는 또 “학교 교권보호위원회 결정에 대해서는 이를 존중하고 조속히 위원회 결정을 이행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교보위 판단이 내려진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이행되지 않은 사과 등의 절차를 따르겠다는 얘기다.

교육부 조사 나섰지만…지난해 12월엔 구두경고

1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권회복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아동복지법 개정과 생활지도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1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권회복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아동복지법 개정과 생활지도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 관계자는 “우선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이 맞는지 확인을 한 후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시교육청도 교육부 요청에 따라 11일 A씨를 직위해제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A씨에 대한 내용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뒤 자체 조사를 통해 구두경고를 했다. 교육부 측은 “당시 수사기관에선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A씨가 아동학대 신고와 함께 민원을 넣은 세종시에서는 해당 사안을 아동학대라고 결론 내린 뒤여서 다른 조치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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