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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하지만 즐거웠다” … 잼버리, 원성에서 환호성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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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03면

잼버리 참가자들 11박12일 체험기

지난 2일 새만금 야영장에서 폭염에 지쳐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 최기웅 기자

지난 2일 새만금 야영장에서 폭염에 지쳐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 최기웅 기자

“아쉽다”고 했고, 또 “아쉽다”고 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석한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썼지만, 이처럼 같은 표현을 했다. 새만금 잼버리의 만국 공통어가 ‘아쉽다’였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아쉬움은 조금씩 달랐다. 행정의 빈곤과 스카우트 정신의 퇴색, 봉사 정신의 발현 기회 축소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었다. 새만금 잼버리는 어땠을까. 화장실 부족, 벌레 득실이란 원성으로 시작해 K팝 콘서트를 향한 환호성으로 끝났을까. 여러 참가자를 통해서 그 11박 12일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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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고사포 해수욕장 송림에서 숲 밧줄놀이 영외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이명규(59·경기도 고양) 스카우트 지도자는 “철수한다”고 했다. 다음날인 8일이 태풍 카눈을 피해 스카우트 대원들이 철수하는 날이었는데, 그는 하루 앞서 밧줄을 거뒀다. 이씨는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지역의 스카우트 대원과 성당의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인데, 그 기회가 줄어 아쉽다”고 말했다. 사실상 새만금 잼버리는 8일 종료된 것이다. 이씨는 또 “시간이 촉박해 준비가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털어냈다.

잼버리 참가자가 받은 곰팡이 달걀. [뉴스1]

잼버리 참가자가 받은 곰팡이 달걀. [뉴스1]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는 158개국 4만3281명이 참가했다. 예산 1171억원을 들였다. 폭염 대책 등으로 69억원의 예비비가 긴급 투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반시설(235억4200만원)과 야영장 조성(129억3600만원) 등 대원들이 먼저 피부로 느끼는 곳에는 투입이 열악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세계 잼버리를 배운다며, 크루즈를 타고 와인 시음을 하는 등 외유성 출장을 일삼은 것도 문제가 됐다. 지난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2박 3일간 ‘미니잼버리’를 개최했고 6월 하순과 7월 초 등 점검이 수시로 이뤄졌지만, 허사였다. 모기·파리가 달려들었다. 화장실 위생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습도 높은 허허벌판 야영지에 덮친 폭염이 컸다. 영국에 이어 미국·싱가포르 대원들이 빠져나갔다.

“3500명이나 되는 영국 대원들이 빠져나가자 (새만금) 야영장 전체가 술렁였지요”

독일에서 온 루카(16) 대원은 “우리도 떠나야 하나, 혼란스러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루카는 “끝까지 남아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경험하니 오히려 일찍 떠나지 않았던 게 잘한 것 같다”며 “영국·미국·싱가포르 대원들은 아마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의외였다. “야영장? 황량했지만, 진짜 날 것의 캠프를 즐기는 것 같았다.”

미 CNN 뉴스가 7일(현지 시각) 새만금 잼버리 철수 관련 기사를 내보내자 “내가 스카우트를 할 때는 ‘모든 것에 대비하라(be prepared)’는 것이 모토였다. 지금 아이들은 너무 약해 빠졌다” “야영을 하며 생존하는 것이 스카우트의 목표인데 왜 호텔에서 아이들을 자게 하느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국내외 참가자, 봉사자들은 “처음에는 열악했지만, 점점 적응하고 친해지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친구(대원)들, 참 신기하고 대단하네요. 땀을 그렇게 흘리고도 땀 냄새가 안 나요. 하하하.”

조기 퇴영한 영국 대원들의 다리에는 벌레에게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 [연합뉴스]

조기 퇴영한 영국 대원들의 다리에는 벌레에게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새만금의 수은주는 기어이 36도를 찍었다. 태풍 카눈을 피해, 오전 10시부터 대원들이 철수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스카우트 대원 아치나(17)도 “(새만금) 축제가 무르익을 때 떠난다니, 아쉽다”고 했다. 그는 “너무 더웠지만, 적응했다. 추운 카자흐스탄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뜨거운 맛”이라며 웃었다. 아치나는 자신이 웃는 이유에 대해 “위생 문제가 조금 있었는데, 스카우트로서 대단치도 않았고, 음식 문제도 점점 나아진 데다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며 “밖에서는 어떤 말이 오가는지는 모르지만, 대원들끼리는 즐거웠다”고 말했다.

‘밖’에서는 잼버리 책임론을 놓고 여야 공방이 벌어졌다. 개최지로 선정된 문재인 정부 때 준비를 제대로 못 했고, 윤석열 정부 들어 실행에서 문제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주관은 지자체(전북도)였지만, 중앙정부가 수습하는 것으로 급선회했다. 또 다른 행사 주도 기관인 여성가족부는 존폐 위기에 몰렸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야영장 불시 점검을 이어갔고 화장실 청소까지 했다. 예멘 대원들이 불참했는데 8일 조기 퇴영 후 이들을 기다리던 충남의 한 대학은 준비해 놓은 뷔페 175명분을 버렸다. 시리아 대원 숙소로 지정된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들의 불참을 파악 못 한 조직위가 '준비하라'고 통보만 한 것이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잼버리는 세계청소년야영대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미래 청년 지도자들이 수련하고 교류하는 과정이고, 한국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이미지와 국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라며 “책임은 확실히 물어야 하고, 향후 부산이 추진하는 세계엑스포 개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신겸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교수는 “새만금 잼버리는 총체적 부실”이라며 “3명의 중앙부처 장관을 포함한 5명의 조직위원장은, 책임과 권한이 어정쩡해져 컨트럴타워의 부재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한 스카우트 관계자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소리소문없이 지나갈 뻔했던 새만금 잼버리가 방방곡곡, 세계 곳곳에 알려졌다”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잼버리가 마무리되면서, 시선은 준비 부족과 이권 개입 등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쏠리고 있다. 여권은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문책을 예고한 상태다.

아치나가 카자흐스탄에서 함께 온 봉사자 알리나(22)에게 물어봤다. “K팝 콘서트가 전주라고?” 알리나는 “일정이 급하게 바뀌어서 헷갈리는 것 같은데, 서울.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이라고 답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기대되는 마지막 일정입니다. 뉴진스와 있지(ITZY)가 나온다고요? 대박.”

1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잼버리 대원 4만여 명이 몰렸다. 그중 한 명, 홍콩에서 온 에드먼드(19)는 “새만금에서 서울로 올라온 뒤 찾은 명동은 별천지였다. 한국 사람들이 저희보고 파이팅, 파이팅 외쳐주는 걸 보고 울컥하더라”고 전했다. 새만금 잼버리는 야영에서 문화 체험으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K팝 콘서트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출입기자만 출입이 허용된다고 했다가, 이후 ‘문화부 기자이면 가능’이라고 정정한 해프닝도 있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하지만 에드먼드는 “야영도 좋지만, 스카우트의 모토 중 하나는 교류이기 때문에 폭염과 태풍으로 일정이 어쩔 수 없이 바뀌었다면 다른 형태의 교류도 스카우트 정신에 부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키라라(14)도, 네팔에서 온 아스두스(15)도 “한국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며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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