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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우리밀에 물·소금만 넣어 21시간 정성을 굽는 ‘생명의 빵’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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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24면

이택희의 맛따라기

“우리밀을 지키는 빵을 굽습니다. 씨눈 있는 밀, 자가제분, 전립분, 사워 도우, 밀기울”

“빵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예전 방식대로 발효하여 빵을 굽습니다.”

오븐에서 갓 나온 통밀·통호밀 사워도우와 캉파뉴 빵. 표면의 X자 모양은 빵이 잘 부풀어 속살이 부드럽도록 칼집을 낸 흔적이다. [사진 이택희]

오븐에서 갓 나온 통밀·통호밀 사워도우와 캉파뉴 빵. 표면의 X자 모양은 빵이 잘 부풀어 속살이 부드럽도록 칼집을 낸 흔적이다. [사진 이택희]

서울 혜화동의 베이커리 카페 ‘콩플레’ 앞에 가면 간판보다 이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상호는 프랑스어 ‘Complet’를 한글로 표기한 말이다. 완전하다(통밀), 밀기울이 섞인 빵(pain complet) 같은 뜻의 단어다. 유리창에 “금강밀·조경밀·앉은키밀·곡우호밀·아리흑밀”이라는 곡물 품종도 써 놨다. 이것만 읽어도 정체성을 넉넉히 알겠다. 빵은 국산 통밀·통호밀 가루에 물과 소금만 넣고 굽는다. 통곡물은 새 생명을 일구는 영양의 완성체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더 이롭다.

햇밀의 계절을 맞아 제분~제빵 과정을 살펴보러 가서 빵 실습을 하게 됐다. 주인 따라 만든 금강밀 사워도우를 선물로 받았다. 함께 구운 100% 곡우호밀 사워도우는 한 덩이를 샀다(1㎏ 2만5000원). 보름간 그 빵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우선 속이 편했다. 맛도 기대보다 좋다. 특히 금강밀 빵은 속살은 부드럽고 표면은 마이야르 반응 층이 고르게 두터워 얇게 눌은 가마솥밥 누룽지 맛과 질감이 연상된다. 빵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으로서 요즘 자주 듣는 ‘밥빵’ ‘식사빵’이라는 말의 효용을 제대로 체험한 기회였다. 호밀빵은 맛이 시큼하지만, 꼭꼭 씹으면 통곡물 특유의 복합적 구수함이 솔솔 피어난다. 만들기도 먹기도 시간이 걸리는 슬로푸드라는 생각이 든다.

약속한 오후 1시에 찾아가니 다음날 쓸 빵 반죽을 막 시작했다. 빵을 한 덩이 만들어보라고 권하며 재료를 정확히 저울에 달아 반죽 그릇에 담아주었다. 설명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했다. 엉거주춤 시늉을 했다. 전남 해남 강태양 농부가 생산한 자연농 3분도 금강밀 가루 400g, 금강밀 천연발효종 80g(밀가루의 25%), 물 300㎖(75%), 소금 5g(밀가루+발효종 무게 약 1%). 보통은 물을 밀가루 무게 85%로 하지만, 이 빵은 반죽을 치대는 글루텐 활성화 과정을 안 거치는 무반죽 빵이라 물을 약간 적게 잡았다고 한다.

재료를 버무린 반죽을 다섯 손가락을 다 써서 고루 주물러 뭉친 가루를 풀어준다. 상온(25~30도)에 두고 30분마다 반죽을 반으로 접어준다(폴딩). 세 차례 접어주며 전체 3~4시간 발효 후 발효통에 담아 도우컨디셔너에 넣고 15시간 저온(10도)발효한다. 발효 과정만 배우면 집에서 전기밥솥으로 빵을 얼마든지 구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다음날 오전 7시 30분에 다시 갔더니 1시간 전부터 오븐을 예열하면서 반죽을 꺼내 상온에 두고 냉기를 빼고 있었다. 실습 반죽 표면에 X자로 칼집을 냈다. 빵이 익으며 부풀 때(오븐 스프링) 지붕이 잘 열리도록 틈을 내는 것이다. 그래야 빵의 속살이 부드럽게 익는다. 표면에 밀기울을 살짝 뿌리고 오븐에 넣었다. 총 중량이 약 800g이라 오븐 상 250도, 하 225도 온도에서 40여분 구웠다. 꺼내서 보니 다른 빵보다 좀 덜 부풀었다. 무반죽 빵이라 그렇다며, 그런 빵 치고는 잘 나온 편이라고 한다. 밀가루가 빵이 되는 데 20시간 넘게 걸린 셈이다.

‘콩플레’ 여주인 오해원씨. 오전 6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그의 하루는 온전히 빵과 함께한다.

‘콩플레’ 여주인 오해원씨. 오전 6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그의 하루는 온전히 빵과 함께한다.

여주인 오해원(55)씨의 하루는 온전히 빵과 함께 돌아간다.

오전 6시 30분 공방에 나와 오븐을 켜면서 시작해 점심 전까지 빵을 굽는다. 저온발효한 반죽은 상온에서 1시간 냉기를 빼고, 상온발효한 반죽은 분할해서 표면이 마르지 않도록 면포로 감싸 90분간 2차 건발효한다. 물·소금 외에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빵은 이 과정을 거친다.

새로 구운 빵이 시간마다 매대에 진열된다. ▶오전 9시 금강밀·앉은키통밀 캉파뉴, 곡우호밀 사워도우 ▶10시 바게트, 치아바타, 포카치아, 고르곤졸라먹물피자, 할라피뇨치즈빵 ▶10시 30분 바게트샌드위치(루꼴라 하몽, 비건 버섯) ▶11시 무화과통호밀빵, 씨앗·에멘탈치즈호밀빵.

낮 12시부터는 다음날 빵 만들 반죽을 한다. 종류별 순차로 25~30도에서 3~4시간 습발효한다. 그 반죽 일부는 무게 맞춰 분할해 발효통에 담고 도우컨디셔너에 넣어 저온 습발효하고, 일부 그냥 상온 발효한다. 여기까지 마치면 오후 6~7시, 정리하고 퇴근하는 시간은 오후 9~10시다. 1단계 발효는 다음날 아침까지 15시간쯤 걸린다.

일을 혼자 하므로 하루 근무시간은 17~18시간. 퇴근한다고 빵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고 국산 통밀가루에 물·소금만 넣어 빵을 만들 때 핵심과정인 발효는 민감한 생명활동이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인다. 집이 고덕동인데 시간에 쪼들려 공방 옆에 숙소를 따로 마련했다. 집안 살림도 해야 하므로 일주일에 일·월·화요일 사흘을 쉰다.

빵 굽기는 20년 전쯤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으며 삶의 의지가 증발해 바닥을 보일 때 어릴 적 꿈의 창고에서 제빵을 찾아냈다. 오로지 빵만 생각하는 나날 속에 소생의 싹이 텄다. 2015년 3월 상일동에 ‘콩플레’를 처음 열었다. 2017년 고덕동으로 이사하고, 지난해 12월 혜화동으로 다시 옮겼다. 이 빵을 서울에 사는 필자는 울산에서 처음 만났다. 취재원이 좋은 빵이라 주문해 먹는다며 맛보라고 나눠줬다.

오해원씨는 말한다. “콩플레가 나를 살렸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빵은 특별하다. 빵이 나를 구원했고, 이젠 건강에 좋은 빵을 굽는다. 모양보다 소화 흡수 잘되고 사람에게 이로운 빵을 만드는 게 목표다. 몸에 좋은 게 맛도 있다.”

빵은 택배 주문도 할 수 있다. 날마다 구성이 다른 꾸러미(5만원)로 보내준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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