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세컷칼럼

유리 천장 깨부순 두 여성…"남은 한계 하늘뿐이길"

중앙일보

입력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지난달 미국 해군 참모총장(대장)에 처음으로 여성이 발탁됐다. 리사 프란체티(59) 제독이 여기에 오르는 데 걸린 미 해군의 시간은 248년. 해군 전투함은 원래 일본 스모의 도효(씨름판)처럼 “여성이 오르면 부정 탄다”는 미신이 가장 오래 지배하던 금녀의 공간이었다. 미 해군은 1994년에야 전투함·전투기에 여성을 허용했다. 미국의 여성 참정권 허용이 1920년이니 이후에도 여성을 가장 거부해 온 성역이었다. 한국 역시 2012년 고속함장을 시작으로, 2020년에야 여성이 최전방 전투함장에 임명됐었다.

 248년 만의 여성 참모총장 프란체티
“삶의 멘토들, 사람·팀워크 가장 소중”
노예 후손 첫 흑인여성 대법관 잭슨
“내면의 목소리, 선택 믿고 따라가라”

 미 해군 참모총장은 병력 43만 명, 항공모함·이지스함 등의 주요 전투함 302척, 핵추진 잠수함 74척, 항공기 3700대 등으로 오대양을 지배해 온 세계 최강의 무력을 지휘한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 연방대법관에 첫 흑인 여성을 지명했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53) 대법관은 원래 농장 노예(‘존 그린’으로 추정, 워싱턴포스트)의 후손. 변호사의 4.7%만 흑인이고, 전체의 2% 미만인 70명의 흑인 여성만이 연방 판사로 재직했을 뿐(뉴욕타임스 통계)인 대법관의 유리천장을 그녀가 깨부수는 데 233년이 흘렀다. 무엇보다 이 두 여성들이 후배들에게 일러 주는 도전·성장과 성공으로의 조언이 소중하다.

 프란체티 제독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며 중동 전문기자를 꿈꿨던 언론학도였다. 장학금을 주는 해군 ROTC의 매력이 행로를 바꾸었다. 군인이라 노출이 거의 없던 그녀는 중장 시절 ‘노스웨스턴대 동문 인터뷰’(2019년)에서 처음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선택한 일에 확고한 믿음을 지니라는 게 으뜸의 조언이었다. “인생은 탄탄한 직선 도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강이다.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에 흔들리지 말고 목표에의 믿음을 고수하라. 그러면 결국 찾아올 기회의 문을 열 수 있다.” 이 총장 지명자는 너무나 즐겁게 일하던 NASA 청소부에게 누가 이유를 묻자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했던 일화도 거론했다. 잭슨 대법관 역시 “살면서 늘 정말로 원하는 것과, 다른 이들의 기대를 따르라는 압력에 직면한다”며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 ‘아 이거 대단해, 난 이걸 하고 싶어’를 따라 가라. 스스로의 모험 말이다”(조지타운대 졸업식 연설)고 조언한다.

 사람의 중요성과 관계, 팀워크, 그리고 인생의 ‘멘토 갖기’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덕목. 프란체티 제독의 기억이다. “해군에 와 보니 여성 제독은 단 한 명이더라. 그녀는 훌륭한 멘토였다. 나는 먼저 그 길을 가며 장애물을 헤쳐나가 내가 그 장애를 겪지 않게 해 준 모든 여성의 수혜자였을 뿐이다.” 초급 시절 비전투 장교로 밀려난 게 미래 총장감의 첫 번째 좌절이었다. “책상이나 조종하러 군에 온 건 아니니…. 의무복무 뒤 제대하겠다고 체념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더라. 당시 상관이 ‘이봐, 넌 꼭 배에 필요한 존재야.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을 거야. 함께 그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 뒤 마법처럼 정원이 빈 곳에 한 자리가 났고, 결국 전투함 장교가 되는 기회를 맞게 됐다.”

 유리 천장을 깬 건 ‘함께’였다는 얘기는 여성끼리에게만 국한된 조언은 아니었다. “좋은 멘토가 없었다면 난 이 자리에 오지 못했다. 결코 홀로 치르지 못하는 게 전투다. 당신이 이야기를 건넬 수 있고, 조언이나 비판도 해 줄 사람, 당신의 분야뿐 아닌 외부의 목소리들을 만들어 늘 귀 기울여라. 여성만이 아니다. 남성이나 동료, 때론 후배 멘토가 꼭 필요하기 마련이다.”

 잭슨 대법관 역시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당신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등학교 토론코치 선생님부터 인종차별 속에 자라신 부모님, 서기로 모셨던 여성 지방법원 판사 등 많은 삶의 멘토가 있었다. 특히 4명의 자녀와 일을 병행했던 그 판사 선배는 일과 삶의 균형, 집에 돌아와 유치원생 아이의 전화를 받고,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워킹맘의 방식 등에 적잖은 배움을 주었다”고 감사해 했다.

 그들의 멘토처럼 이 두 여성은 거친 장애를 돌파해 왔다. 최후의 생존자란 늘 숱한 고통의 산물. 후배들도 기회가 오도록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을 터다. 이들은 그럼에도 절제와 균형, 내려놓음의 조언을 잊지 않았다.

 “모든 장미가 동시에 피는 건 아니지 않으냐. 너무 공로를 내세우진 말라. 그냥 자기 일을 하면 사람들은 알아차리고, 기회가 찾아온다. 성공이란 임종 직전 ‘이 세 가지는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들일 뿐.”(프란체티) “모든 것에 늘 완벽하진 못할 수 있다는 데 익숙해져라. 놓아줘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러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된다.”(잭슨, WP 인터뷰) 잭슨의 하버드 로스쿨 흑인여성 후배인 브리아나 뱅크스의 소감(NYT 인터뷰)이 걸작이다. “이제 남은 한계는 하늘뿐이네요.” 모든 여성의 도전과 성장을 기원한다. 온 사회가 모두 꿈꾸는 여성들의 좋은 멘토가 될 날도 함께….

글=최훈 주필 그림=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