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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 피 철철 흘려도 입원 못했다…"응급입원 바늘구멍"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일 오후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원곡다문화파출소. 경기남부경찰청 응급입원 합동 현장지원팀과 119구급대원들이 대상자인 박모(53)씨에게 외상 치료와 응급입원을 설득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지난 2일 오후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원곡다문화파출소. 경기남부경찰청 응급입원 합동 현장지원팀과 119구급대원들이 대상자인 박모(53)씨에게 외상 치료와 응급입원을 설득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내가 치료 받기 싫다잖아요. 내 마음인데….”
지난 2일 오후 9시40분 안산 원곡다문화파출소, 박모(53·중국 국적)씨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찰관을 향해 소리쳤다. 박씨는 이날 오후 8시쯤 원곡동 자택에서 상의를 벗은 채 서랍장 위에 누워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 집주인이 “세입자가 집 안에 있는 집기를 다 부수고 술에 취해 피를 흘리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원곡다문화파출소 소속 이지석·박창순 경장은 박씨가 자해를 한 것으로 파악해 일단 그를 파출소로 옮겼다. 파출소 측은 지난 1월 박씨가 86세 노모를 폭행해 출동했을 당시 그를 응급입원 시켰던 기록을 확인하고, 경기남부경찰청 응급입원 합동 현장지원팀에 응급입원을 의뢰했다.

그때부터 경기남부청 응급입원 합동 현장지원2팀(합동2팀)이 바빠졌다. 경기남부청은 지난해 11월, 요원 4명(경찰관 3명, 정신건강 전문요원 1명)으로 구성된 합동 현장지원팀 2개를 만들었는데 박씨 사건은 2팀에 배정됐다. 먼저 권채영 정신건강사회복지사(전문요원)가 박씨의 응급입원 이력, 상담 기록 등을 정신건강사례관리시스템(MHIS)을 통해 확인했다. 확인 결과 박씨는 알콜중독과 조현병 치료·입원 이력이 있는 정신건강복지법상 응급입원 대상자였다.

지난 2일 오후 ″세입자가 집기를 부수고 발에 피를 흘리고 있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안산단원경찰서 경찰관들이 응급입원 대상자인 박모(53)씨를 발견했을 당시 모습이다. 조현병과 알콜중독 진단을 받은 박씨 집 안에 집기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지난 2일 오후 ″세입자가 집기를 부수고 발에 피를 흘리고 있다″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안산단원경찰서 경찰관들이 응급입원 대상자인 박모(53)씨를 발견했을 당시 모습이다. 조현병과 알콜중독 진단을 받은 박씨 집 안에 집기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합동2팀장 김학중 경위의 지시를 받은 하재성 경장은 입원 가능한 정신의료기관 수소문에 나섰다. 의왕시 K병원 관계자로부터 “병상이 있다. 응급입원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 30㎞를 달려 오후 9시22분쯤 원곡다문화파출소에 도착했다. 10여분 간 박씨를 상담한 권 복지사는 “박씨가 음주를 하면 뭘 깨뜨리고 싶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고 했다”며 “사흘이라도 입원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팀장 김 경위가 “응급실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러 같이 가요. 부축해드릴까요?”라며 설득에 나섰다. “병원에 가기 싫다”며 5분 간 격렬하게 치료를 거부하던 박씨는 9시 51분쯤 다리를 절뚝이며 119 구급차에 탔다.

그러나 박씨는 K병원에 결국 입원하지 못했다. 외상 치료를 위해 먼저 찾은 응급실에서 박씨에게 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정신의료기관에는 내·외상을 치료할 전문의가 없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하거나 심장·뇌혈관 질환, 당뇨병 등 지병이 있는 대상자의 응급입원은 받지 않는다. 박씨를 자택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던 합동2팀은 결국 그를 다시 원곡다문화파출소로 데려갔다. 박씨는 파출소 경찰관들이 펴놓은 간이 매트 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해가 뜬 뒤 파출소를 찾은 보호자와 함께 귀가했다.

지난 2일 오후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원곡다문화파출소. 경기남부경찰청 응급입원 합동 현장지원팀이 대상자인 박모(53)씨에게 외상 치료와 응급입원을 설득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지난 2일 오후 경기 안산단원경찰서 원곡다문화파출소. 경기남부경찰청 응급입원 합동 현장지원팀이 대상자인 박모(53)씨에게 외상 치료와 응급입원을 설득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경찰은 2019년 이후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지원을 강화해왔다. 2019년 4월 조현병을 앓다 진주에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을 벌여 5명을 숨지게 한 ‘안인득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윤희근 경찰청장 지시로 전국 시·도경찰청에 현장지원팀도 속속 설치됐지만, 현장에서는 “실제 입원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김 경위)는 하소연이 여전히 나온다.

대표적인 난제가 미성년자 응급입원이다. 경기남부청 현장지원팀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총 200건의 응급입원을 처리했는데, 이중 10대가 21명이었다. 하지만 “특히 초·중등학생 응급입원 의뢰를 받아주는 병원은 실제 거의 없어 대응하기 쉽지 않다”는 게 김 경위의 설명이다. 실제로 9일 오후 9시 기준 응급입원이 가능한 잔여 병상은 10개였지만, 미성년 응급입원 대상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활동 과정에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합동2팀 유현경 경사는 지난달 5일 수원중부경찰서 율천파출소의 지원 요청을 받고 현장에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119 구급대원을 폭행한 뒤 경찰서 형사과 피의자 대기실에 있던 정모(50)씨에게 “왜 이렇게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하느냐”는 폭언과 함께 폭행을 당해 뇌진탕 진단 소견을 받았다. 서현역 차량돌진·흉기난동 사건으로 응급입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사법입원제(중증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여부를 법원이 결정하는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정작 응급입원도 위태롭게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2일 동행한 합동2팀의 야간근무는 이날 오후 8시부터 꼬박 12시간이 흐른 3일 오전 8시에 끝났다. 야간근무를 마친 합동2팀의 막내 하재성 경장은 “입원 대상자들이 극단적 경향이 있긴 하지만, 결국 ‘살려달라’는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며 “이들이 지속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남부청은 2020년 이후 3555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응급입원 의뢰를 처리했다. 서울(3104건)·경남(2917건)·대구(2762건)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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