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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대법도 돌아섰다…45만원이면 뚝딱, 美 흔드는 '유령총'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유령총 규제 행정명령이 발표될 당시 전시된 유령총 제작 키트.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유령총 규제 행정명령이 발표될 당시 전시된 유령총 제작 키트. 로이터=연합뉴스

‘유령총(Ghost Gun)’에 미국이 들썩이고 있다. 수십만원이면 권총은 물론 반자동 소총을 만들 수 있어 총기 범죄가 끊이지 않는 미국의 걱정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보수 대법관이 다수인 미 연방대법원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유령총 규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8일(현지시간) 찬성 5 반대 4로 바이든 행정부의 유령총 규제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유령총 규제는 지난해 4월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행정명령이다. 완성된 총이 아닌 총기 부품도 총기로 규정해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부품 구매자의 신원을 조회하도록 했다.

앞서 지난달 텍사스주 법원의 리드 오코너 판사는 지난달 “총기부품은 총이 아니다”란 판결로 행정명령을 무력화했는데, 대법원은 텍사스 법원의 판결 효력을 중단시켜 달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총기소유에 비교적 관대한 것으로 알려진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명으로 우위인데도 대법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령총 규제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유령총 제작 키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유령총 규제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유령총 제작 키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령총은 3D프린터로 만들거나 인터넷 등으로 구입한 총기 조립키트로 사용자가 직접 만든 총을 말한다. 스스로 제작한다고 해 ‘DIY(Do It Yourself) 총’으로도 불린다.

“30분 안에 총 만든다”

뉴욕타임스는 “제작 키트의 80%가량은 이미 조립된 상태로 오기 때문에 소비자는 나머지 20%의 마무리 작업만 하면 된다”며 “조립 방법 또한 유튜브 등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가격도 싸다. 미 총기 사건에 자주 사용되는 반자동 소총 AR-15 제작 키트의 경우 345달러(약 45만원)면 살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행정명령 발표 당시 유령총 조립 키트를 들어 보이며 “범죄자·테러리스트·가정폭력범이 30분 이내 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AR-15 반자동 소총. 사진 위키피디아

AR-15 반자동 소총. 사진 위키피디아

유령총이 위험한 건 총기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연방법에 따라 총기 제조사가 총기에 일련번호를 표시하도록 하고, 구매자들은 신원조회를 받아야 한다.

금속 덩어리로 간주, 규제 사각지대

하지만 유령총은 어떤 규제도 받지 않아왔다. 총기부품은 ‘금속 덩어리’에 불과할 뿐 총이 아니라고 간주됐기 때문이다. 특히 조립 총은 일련번호가 없어 추적이 어렵다. 총기 사고 예방 단체 브래디의 크리스티안 헤이니 부회장은 “2009년 이후 주별로 총기 규제가 강화되는 움직임이 보이자 이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령총 사용이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실제로 유령총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 주류·담배·총기·폭발물단속국(ATF)이 범죄 현장에서 압수한 유령총은 지난 2017년 1629정에서 2021년 1만9273정으로 1000% 이상 증가했다. 지난 2020년~2021년 사이 캘리포니아주가 범죄 현장에서 압수한 총기 중 25~50%가 유령총이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유령총과 함께 미국 내 총기 사고 희생자도 늘고 있다. 미 전역의 총기 사고를 집계하는 ‘총기 폭력 아카이브’에 따르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미국인의 수는 2021년과 지난해 2년 연속 2만명을 넘었다. 올해도 지난 1일 기준 사망자가 1만1100명을 넘었다.

지난해 7월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아베 전 총리에게 총격을 가하고 경호원의 제지를 받고 있다. 데쓰야가 왼손에 든 것이 그가 직접 만든 사제 총기다.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가 아베 전 총리에게 총격을 가하고 경호원의 제지를 받고 있다. 데쓰야가 왼손에 든 것이 그가 직접 만든 사제 총기다. AP=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도 사제 총에 피살 

사제 총기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를 숨지게 한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의 살해 도구가 사제총이었다.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총기 제조법은 인터넷 동영상을 참고해 만들었고, 부품과 화약류는 온라인에서 구매했다”고 진술했다.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 2016년 발생한 ‘오패산 총격사건’이 대표적이다. 성범죄 전과자가 서울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직접 만든 쇠구슬 총기를 난사해 경찰관 한 명이 숨졌다. 지난 2015년 제정된 ‘삼차원프린팅산업 진흥법’에선 총포·도검·화약류 및 마약류 등 사람의 생명·신체를 위협할 수 있는 물품 제조를 금지하고 있지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없어 ‘무늬만 규제’란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16년 발생한 오패산 총격사건에서 사용된 사제총기. 중앙포토

지난 2016년 발생한 오패산 총격사건에서 사용된 사제총기. 중앙포토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총기제작법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며 “포털과 유튜브 등에 총기제작·사제총 등 특정 검색어를 제한해 관련 게시글을 걸러내는 의무를 부과하고 어길 시 영업이익의 일부를 과징금으로 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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