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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채수근 해병 순직 조사 둘러싼 논란…사건 축소는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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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폭우로 실종된 주민 수색 임무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묘비. [프리랜서 김성태]

폭우로 실종된 주민 수색 임무 도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묘비. [프리랜서 김성태]

수사단장 ‘엄정하게 조사’ 국방부 “항명 수괴”

진상 밝혀 ‘윗선 봐주기 축소’ 의혹 불식시켜야

지난달 19일 집중호우 때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희생된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의 사망과 관련한 조사가 군내 자중지란으로 번지고 있다. 당시 아무리 해병대라 하더라도 군 당국이 급류에 투입하면서 구명조끼조차 착용시키지 않은 건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런데 군 당국의 조사 결과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보고받고 이를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서 항명 및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채 상병 사망 직후 해병대는 박정훈 대령을 단장으로 하는 수사단을 꾸려 사건을 조사했다. 박 대령은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소장) 등 8명의 간부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난달 30일 이를 이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 장관도 당시 몇 마디 질문 이후 결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인 사망사건과 성범죄 등의 수사 및 재판은 민간 사법기관이 담당하도록 한다는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관련 내용을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에서 국방부와 박 대령이 충돌했다. 박 대령은 이 장관에게 보고하고 결재받은 조사 결과를 지난 2일 경북경찰청에 넘겼다. 반면에 국방부는 ‘법리 검토가 더 필요하니 이 장관의 우즈베키스탄 출장(지난달 31일~지난 3일) 이후에 처리하자’며 ‘잠시 대기’ 의견을 냈다는 입장이다. 국방부는 경찰에 넘어간 조사 결과를 회수한 뒤 박 대령을 명령 불복종 및 항명이라며 보직에서 해임했다. 또 그를 ‘집단항명 수괴’라는 혐의로 입건했다.

해병 대령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9일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언론에 밝힌 입장문 [사진=연합뉴스]

해병 대령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9일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언론에 밝힌 입장문 [사진=연합뉴스]

그러자 박 대령은 어제 변호사를 통해 “그런 지시를 직접·간접적으로 받은 적이 없다. 대통령의 엄정 조사 지시를 따른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박 대령은 “해병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고개를 숙이지 않은 것”이라며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개인 의견과 차관의 문자 내용만 전달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분명한 진실이 있건만 상반된 주장이 맞서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사 결과 번복 배경에는 대통령실이 있다”(군인권센터)거나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임 사단장을 구하려는 실세 고위층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물론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9일 이를 전면부인했다.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언론과 국회에 조사 결과를 설명하려다 일방 취소하는 등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군에서 항명이 있었다면 물론 중범죄다. 그러나 장관이 결재한 사안을 누군가 구두나 문자로 이를 뒤집도록 했다면 심각한 사건 은폐·축소 의혹에 직면할 수 있다. 군 당국은 북한군의 귀순이나 월북, 각종 군내 사고 때 숱한 은폐, 축소 의혹을 받곤 했다. 청년의 목숨을 앗아간 이 안타까운 사건까지 고위층을 봐주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면 이건 국기문란의 범죄다. 신속히 진상을 조사해 진실을 국민 앞에, 그리고 채 상병 영전에 밝혀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