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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유령취급하나"…이화영이 거부한 변호사, 재판 중 짐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사외이사 시절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비비안 행사장에서 촬영한 사진. 독자 제공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쌍방울 사외이사 시절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비비안 행사장에서 촬영한 사진. 독자 제공

변호인 선택을 둘러싸고 부인과 갈등을 노출해 온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재판이 또 다시 파행됐다. 8일 오전 10시부터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신진우) 심리로 열린 이 전 부지사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에 대한 42차 공판은 휴정과 재개정 끝에 1시간 여 만에 끝났다.

최근 방북 비용 제공 문제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구두 보고를 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가 “그런 적 없다”는 자필 문건을 외부에 공개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온 이 전 부지사가 어떤 법정 진술을 내놓을 지를 두고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재판이었다. 특히 구두 보고 사실을 진술한 검찰 진술 조서에 대한 증거 동의 여부가 재판 초점이었다. 그러나 재판은 결국 파행돼 22일로 연기됐다.

파행분위기는 개정과 동시에 형성됐다. 재판이 시작되자 이 전 부지사는 재판부에 “(기존 변호인인) 서민석 변호사(법무법인 해광)의 조력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2장짜리 자필 입장문을 제출했다. 이 전 부지사는 “피고인 배우자가 (법무법인 해광)해임 의사를 밝힌 것은 피고인 입장을 배우자가 오해한 것으로 피고인은 변호인에 대한 신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취지 맞느냐”는 재판부의 의사 확인에도 “맞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오늘 재판을 (다음 기일로) 넘기고 법무법인 해광 변호인과 함께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변호인석엔 10개월 째 변호를 맡아왔던 서민석 변호사가 아닌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 대표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그러자 검찰 측은 “변호사 해임과 관련한 가족 간 견해 차이라는 완전히 재판 외적인 내용 때문에 한달째 공전되고 있다”며 “피고인은 계속 같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싶다는 데 그게 법정에서 이뤄지지 않고 언론보도, 옥중서신, 가족 입장문 등 외부적 요소에 따라 이화영 피고인의 입장을 추측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 측은 또 “솔직히 피고인 측에 재판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며 “덕수는 공판에 계속 참여해 왔지만 피고인 측과 어떤 소통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닌 거 같은데 피고인 의사나 이익에 부합하는 변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변호인 선임 문제가 정 해결되지 않으면 차라리 국선변호인을 전속시켜 재판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발끈했다. 김 변호사는 “공소장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재명 방북 비용 300만 달러 대북송금에 관한 검찰에서의 진술이 있는데, 지난 번에 피고인 많아서 인정할 만한 것이냐에 대해 충분히 들었고 거기에 대해 증거 인부(증거 부동의)를 하러 나왔다”며 “내가 마치 그림자나 유령인 양 보면 안 된다”며 “버젓이 덕수가 나와 있는데 국선변호 하자는 건 재판권 침해”라고 말했다.

8일 오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42차 공판을 앞두고 한 시민이 수원지검 앞에서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 대북송금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피켓을 들고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이 전 부지사의 호송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손성배 기자

8일 오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한 42차 공판을 앞두고 한 시민이 수원지검 앞에서 ″우리는 진실을 원한다. 대북송금 진실은 감출 수 없다″는 피켓을 들고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이 전 부지사의 호송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손성배 기자

변호인과 이 전 부지사의 다른 생각으로 인한 혼돈 끝에 결국 재판장은 개정 30분 만에 휴정했다. “10분만 시간을 주면 피고인과 의견을 조율해 말씀드리겠다”던 김 변호사는 재개정 후 “오늘 재판은 법무법인 해광 측에서 나가달라고 해서 나왔지만, 피고인이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재판부 기피 신청서와 검찰 피신조서 증거 부동의 의견서를 낸 뒤 사임계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증거의견서에는 “피고인(이 전 부지사)이 검찰 등의 회유, 압박에 못 이겨 임의성 없는 자백을 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다”는 증거부동의 의사가 기피신청서에는 “재판장 신진우에 대한 기피 신청을 인용해달라. 기피 신청 대상 법관은 검찰의 불완전한 공소장을 그대로 방치한 상태로 피고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절차 진행을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18년 7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집무실에서 이화영 전 당시 평화부지사에게 임용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2018년 7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집무실에서 이화영 전 당시 평화부지사에게 임용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김형태 “검찰 회유·압박” 주장 후 사임…검찰 “사법 방해”

 검찰은 의견서에 즉각 반발했다. 검찰 측은 “지난달 25일 변호인이 무단으로 불출석했고, (이날) 사임하면서 피고인 의사에 반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 변호사가 검사를 향해 “왜 자꾸 무단이라고 하느냐. 당신이 예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 훈계하지 말고 무단이라 하지 말라”“변호하는 법무법인 해광을 수사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면서 언쟁이 벌어졌다.

검찰은 “(변호인이 모두 불출석한) 7월 25일 이후에 피고인과 교감이 있어서 증거 의견을 낸다거나 또는 재판부에 기피 신청을 하는 게 아니고 오로지 검찰 피신조서에 부동의하는 미션을 받고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재판장이 검찰이) 미션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놔두나”며 “재판을 하는 건지 비아냥거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40년 동안 이런 재판은 처음 해봤다”며 짐을 싸서 퇴정했다.

결국 피고인이 구속 상태로 형사 재판을 받는 경우 변호인 없이 재판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이날 재판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됐다.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에게 증거 의견서와 기피신청서, 변호인 사임서를 사전에 읽어봤는지 물었고, 이 전 부지사가 “못 읽어봤다”고 답변하자 재판부 기피신청을 철회토록 정리하고, 변호인의 증거 의견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인이 사법 방해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 소송기록이 외부로 유출되고 변호사가 갑자기 퇴정하는 등 일련의 사태를 보면 이 재판이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피고인들이 외부 세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재판을 올곧게 유지해나갈 의사가 있는 것인지 확인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수원지검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이 전 부지사의 의사에 반하는 배우자와 변호인의 관여로 인하여 공판이 공전되는 상황에 유감을 표하며, 해당 변호사에 대하여는 변호사 징계개시신청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방청석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과 쌍방울그룹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퇴정하는 이 전 부지사를 향해 “힘내세요. 진실을 얘기하세요. 응원합니다. 화이팅”을 연호하다 법정 경위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2019년 7월 26일 오후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아태 평화 국제대회 리셉션 및 개회식에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경기도

2019년 7월 26일 오후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9 아태 평화 국제대회 리셉션 및 개회식에서 이화영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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