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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께 마음 전해요" 당연해질까…카카오T '택시 팁' 논란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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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식당에서 많이 이용하는 토스트의 결제기기(POS)에는 점주가 팁 선택 화면을 결제과정에 포함시켜 넣을 수 있다. 사진 토스트 공식 블로그

미국 식당에서 많이 이용하는 토스트의 결제기기(POS)에는 점주가 팁 선택 화면을 결제과정에 포함시켜 넣을 수 있다. 사진 토스트 공식 블로그

플랫폼의 넛지(nudge·자연스러운 개입으로 행동 유도)인가, 다크 패턴(dark pattern·눈속임으로 원치 않는 행동을 유도)인가. ‘국민 택시 앱’ 카카오T가 최근 도입한 감사 팁(tip·봉사료)을 둘러 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무슨 일이야

6일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달 19일부터 카카오T 앱에 ‘택시 감사 팁 시범 서비스’를 도입했다. 가맹택시인 카카오T 블루, 고급·대형 택시인 카카오T블랙·벤티 이용자가 그 대상. 해당 택시 하차 후 평가 화면에서 별점 5점을 남기면 ‘기사님께 감사 팁으로 마음을 전해보세요’란 메시지가 뜬다. 이용자가 원할 경우 택시 요금 외 추가로 최대 2000원까지 팁을 더 결제할 수 있다. 회사 측은 “지난해 택시 가맹점 협의회와 논의했던 방안을 시범 서비스로 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T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택시기사 팁 결제 화면. 하차 후 택시기사 평점을 5점을 주면 화면이 나온다. 사진 카카오T 캡처

카카오T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택시기사 팁 결제 화면. 하차 후 택시기사 평점을 5점을 주면 화면이 나온다. 사진 카카오T 캡처

이게 왜 중요해

플랫폼 경제가 확산되며 IT기업이 사회의 규범·관습을 바꾸거나 결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수십년 간 무료이던 짜장면 배달도 배달 앱 등장 이후 ‘배달 팁’ 형태로 유료화된 게 대표적. 미국과 달리 팁 문화가 거의 없는 국내에선 팁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최근 수년 사이 타다·아이엠택시(각 최대 1만원) 등 택시 호출 앱을 중심으로 팁 결제가 확산됐다. 여기에 3500만 명이 쓰는 카카오T까지 가세하면서 기류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팁의 원조 미국에선?

팁 문화의 원조는 미국이다. 식당·술집 등에서 음식값 외 추가로 18~30%를 봉사료로 직원에게 줘야 한다. 반드시 내야 한다는 명시적 규정은 없지만 안 내면 안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도 팁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하고 있다. 핀테크 기업들이 결제 기기(POS·point-of-sale)를 디지털화하면서 포장 주문이나 셀프 서비스에도 결제시 팁을 포함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 예컨대 가게를 직접 방문해 피자를 사는 ‘포장 주문’의 경우에도 POS 기기에 카드를 꽂아 결제할 때 팁 액수를 선택하는 화면을 끼워 넣는 식이다. 물론 ‘팁 없음’(No tip)을 택할 수 있지만 앞에서 지켜보는 직원 눈치를 보느라 팁을 안 내기 어렵다고 한다. 미국 LA 인근에 사는 오모씨는 “예전엔 당연히 팁이 없다고 생각했던 패스트푸드점에서조차 결제 시 팁을 줄 거냐 묻는 화면이 나오는 통에 종업원과 서로 어색한 눈빛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6월 ‘아이패드 화면 때문에 더 많은 팁을 낸다’(Those iPad Screens Are Getting Us to Tip More-Way More)는 기사에서 핀테크 회사들이 설계한 결제 화면이 팁을 내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했다. 팁을 안 내면 미안해지게끔 만들어 소비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는, 일종의 다크패턴이 될 수 있다는 의미. WSJ은 “팁 내는 걸 (결제 화면에) 기본값으로 설정하면 사람들이 이를 사회적 규범으로 여길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미국 식당에서 많이 이용하는 토스트의 결제기기(POS)에는 점주가 팁 선택 화면을 결제과정에 포함시켜 넣을 수 있다. 사진 토스트 공식 블로그

미국 식당에서 많이 이용하는 토스트의 결제기기(POS)에는 점주가 팁 선택 화면을 결제과정에 포함시켜 넣을 수 있다. 사진 토스트 공식 블로그

지금은 넛지, 앞으로는?

카카오T의 택시기사 감사 팁에 대한 이용자 반발은 아직은 크지 않은 편이다. 택시 하차 후 기사 평가 시 최고점인 5점을 줘야 팝업 화면이 나오고, 또 자발적으로 팁 지불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서다. 회사 측은 택시기사 팁이 서비스 질을 개선하는 ‘넛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관계자는 “높은 평점과 함께 팁을 제공해 기사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택시 심야 할증 시간이 확대되고 기본요금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오르는 등 택시비 부담이 급격히 커진 상황에서 팁을 추가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팁 추가 서비스가 자리 잡으면 승객에게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카카오모빌리티도 이같은 우려를 감안해 서비스 화면에 “강요나 대가성으로 감사 팁을 요구 받은 경우 제보해달라”는 메시지를 포함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감사의 의미로 자발적으로 줄 수는 있지만 택시요금은 이미 오를 만큼  오른 마당에, 팁까지 당연시 되면 소비자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