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의 향기

한여름 매미, 누구를 위해 우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곽정식 수필가

곽정식 수필가

이른 아침부터 온 동네가 매미 울음바다다.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면 달구어진 장독뚜껑, 소나기가 길바닥을 후드득 때리는 소리, 삶은 옥수수 냄새 같은 한여름의 추억이 밀려온다.

모내기 철 개구리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지만 한여름 매미 소리에 비하면 약과다. 올해처럼 긴 봄 가뭄 뒤 긴 장마가 이어진 해도 드물다. 긴 장마 뒤 끝없이 우는 매미 소리는 단조롭지만 절절하기만 하다.

매미가 들려주는 인내의 시간
공직자 관모에 붙은 매미날개
이 시대 리더들은 무엇 배울까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매미가 짧은 기간 집중해서 우레와 같이 우는 건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려는 ‘구애’의 표현이다. 사자나 공작, 꿩은 수컷이 화려한 외모로 암컷의 관심을 끌지만 매미는 수컷이 힘찬 소리로 암컷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해서 짝짓기하고 나면 수컷은 바로 죽는다. 암컷도 나무껍질 속에 산란관을 박고 알을 낳은 후 이내 생을 마감한다. 그 알들은 나무껍질 속에서 일 년을 지내고 부화하면 유충이 된다. 유충이 나무에서 떨어져 땅속에 들어가 나무뿌리 속의 수액을 빨아먹으면서 여러 번의 탈피(脫皮)를 거쳐 우화(羽化)하여 성충이 되기까지는 보통 7년이 걸린다.

매미는 큰 울음소리만큼이나 우리에게 큰 교훈을 들려준다. 그중 탈피는 현실이 괴로울 때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매미가 보낸 긴 인고의 세월을 잊고 하는 말이다.

탈피는 나쁜 습관이나 낡은 제도에서 벗어 나올 때 더 의미 있게 쓰인다. 이번 여름 많은 희생자를 낸 지하차도 침수사건이나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준비 부실도 안일한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한 탓이다.

우화는 매미가 어른이 되는 마지막 과정인데 매미의 천적이 깊은 잠에 빠진 밤에 이루어진다. 우화는 늦어도 달이 지기 전, 즉 해가 뜨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이 시간 내에 축축한 날개를 말리고, 펴는 과정까지 모두 마쳐야 한다. 우화 시간이 늦어져 해가 뜨고 나면 새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사극에서 ‘익선관(翼蟬冠)’ 모자를 쓴 왕과 관리들을 본다. 왕이 쓴 관의 뒤쪽에는 한 쌍의 매미날개가 세로로, 관료들이 쓰는 관모에는 날개가 가로로 붙어 있다.

그 유래는 3세기경 진(晉)나라 시인 육운(陸雲)이 매미를 유심히 관찰한 뒤 “매미는 머리에 주름이 있어 우아하고(文), 이슬을 먹고 사니 맑고(淸), 남의 곡식을 탐하지 않는 염치가 있으며(廉), 집이 없으니 검소함(儉)이 있다. 여기에 늘 때에 맞춰 행동하는 믿음(信)까지 있다”라고 칭송했다. 그가 이것을 ‘매미의 오덕’이라고 부른 후 관모에 본격적으로 매미날개를 붙이게 됐다.

관리들에게 익선관을 씌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오랜 기간 땅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짧게 살다 죽는 매미처럼 긴 고생 끝에 관리가 되는 꿈을 이루었어도 매미의 오덕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칫 꿈이 수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옛사람들은 공직자들에게 매미의 오덕을 새기도록 했는데 오늘날 공직자들은 마음속에 어떤 익선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매미의 모습은 불상 머리에도 있다. 몇 년 전 한성백제박물관에서 본 6세기경 동위(東魏) 시대의 불상은 매미가 새겨진 관을 쓰고 있었다. 불상에 붙은 이 매미는 인간의 깨달음 과정이 자신의 일생과 닮았다는 걸 암시하려는 건 아닐까.

매미(蟬)의 한자 이름에는 ‘한 가지’를 뜻하는 단(單)자가 들어 있다. 이런 이유인지 매미는 삶 전체로 인내와 단순함을 보여준다. 살아가는 영역도 태어난 나무와 그 주변이다.

우리는 지금처럼 다양하지만 산만한 시대에 산 적이 없다. 그런 시대에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단(單)’이다. 몇 시간 만에도 각종 디지털 기기에 그동안 맺은 인연이 보내는 문자와 영상물이 가득하다. 때로는 쌓인 문자에 답신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사람을 대면하지 않으면 삶이 단순해질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뭔가를 성취하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단순해야 본질에 다가가고 핵심을 짚어낼 수 있다. 과수원 주인도 튼실한 열매를 얻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가. 세상사 이것저것 다 관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하나에 집중할 때 무엇을 건져도 건지게 된다.

익선관에 붙은 매미날개와 불상의 관에 앉은 매미는 오늘날 우리에게 리더십의 본체를 일러준다. 모름지기 리더는 사사로움에서 탈피하여 오로지 공(公)의 마음으로 일하라는 교훈이다. 오늘 아침 따라 밖에서 매미가 더 크게 운다. 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50여 년 전 제철소 건설에 매진했던 박태준의 한결같은 의지와 인내심을 다시금 생각한다.

◆곽정식=포스코에서 전무로 근무하다 현재 인문경영분야 수필가로 활동 중. 『생존과 자존』 『충(蟲)선생』 『조(鳥)선생』 등을 냈다.

곽정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