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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학의 꽃’ 가스터빈 국산화 시대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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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두산에너빌리티 직원들이 자체 개발한 270㎿ 용량의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최종조립 작업을 지난달 진행하고 있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두산에너빌리티 직원들이 자체 개발한 270㎿ 용량의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의 최종조립 작업을 지난달 진행하고 있다. [사진 두산에너빌리티]

지난달 말 경기 김포 열병합발전소. 중앙 건물에 들어서니 뜨거운 기운이 훅 들이닥쳤다. 발전소 중앙에는 대형 파이프와 연결된 컨테이너처럼 생긴 설비가 있었다.

얼핏 단순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국산 1호 가스터빈’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안병호 두산에너빌리티 김포열병합건설사무소 공무부서장은 “터빈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 탓에 컨테이너처럼 생긴 ‘커버’를 씌워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커버 내부에 들어서니 보온재로 둘러싸인 가스터빈이 위용을 드러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지난달 28일 두산에너빌리티가 만든 첫 국산 가스터빈(270㎿)이 240시간에 걸친 연속 운전 시험을 마치고 김포 열병합발전소(한국서부발전)에서 상업 운전의 시동을 걸었다. 서부발전 측은 이를 통해 인근 약 50만 세대에 전기를, 8만 세대에 열원을 공급할 예정이다.

‘기계공학의 꽃’으로 불리는 가스터빈은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 때 쓰는 동력기관이다. 일반 화력·원자력발전소 등에서는 석탄을 태우거나 핵분열로 증기를 발생시켜 그 힘으로 터빈(회전기관)의 날개를 돌린다. 이 증기(스팀)터빈에 맞물린 발전기가 돌아가며 전기가 생산된다.

LNG를 쓰는 발전소는 다르다. 가스터빈 내에 천연가스와 압축된 공기를 한꺼번에 주입해 연소시키고, 그때 나오는 고온·고압 배기가스로 발전기를 돌린다. 증기를 따로 발생시킬 필요가 없어 가볍고 다루기도 쉽다. 실제 김포 발전소의 가스터빈은 길이 11.5m에 중량 330t으로, 보통의 스팀터빈(12m, 500t)보다 작고 가벼웠다. 가스터빈은 또 전기를 만든 후에 고온의 배기가스를 더 활용할 수 있어 효율도 높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문제는 1500도가 넘는 배기가스 열을 견딜 소재를 만드는 일이 어렵다는 점이다. 전 세계에서 가스터빈을 만드는 업체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일본 미쓰비시파워, 독일 지멘스 등 5개 업체에 불과했던 이유다. 국내 발전소들에 설치된 가스터빈 150여기 역시 모두 외국산이다. 수리·보수도 이들 업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국산화를 위해 두산에너빌리티가 도전을 시작한 건 2013년 7월. LNG 발전소 비중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던 참이었다. 2005년 소형 가스터빈(5㎿)을 만드는 데 성공해 자신감이 붙은 덕도 컸다. 정부가 대형 가스터빈 개발을 국책 과제로 밀며 600억 원을 투자했고 두산 측이 1조원을 투입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두산 측은 1500도 고열에도 견딜 수 있는 ‘초내열 합금 소재’를 만들 수 있었다. 과열을 막기 위해 가스터빈 블레이드(날개)에 차가운 공기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도 만들었다. 그렇게 2019년 9월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첫 대형 가스터빈 개발에 성공했다. 어렵사리 만든 만큼 실증이 중요했다. 이때 적극적으로 나선 곳이 한국서부발전이다. 양측은 약 53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2020년 김포 발전소 착공에 들어갔다. 박홍욱 두산에너빌리티 파워서비스BG장은 “실증 성공과 상업운전 돌입에는 무엇보다 한국서부발전의 역할이 컸다”고 강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내친김에 가스터빈을 주력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6월에는 한국중부발전과 2800억원 규모의 보령신복합발전소 주기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2030년까지 국내 발전소 건설 계획을 살폈을 때, 국산 가스터빈을 쓸 경우 약 10조원의 수입 대체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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