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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넓이 1m 면발 ‘뱡뱡면’ 시진핑·롄잔 만찬 때 즐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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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호 24면

[왕사부의 중식만담] 밀가루 음식 많은 화베이요리

#장면1: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양국은 적대를 청산하고 정식 수교했다. 마오쩌둥 주석이 상다리 휘어져라 마련한 연회에 베이징오리(北京烤鴨)가 나왔다.

#장면2: 산시(山西)에는 ‘전쟁터에서 총은 뺏겨도 식초 통은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식초 사랑이 유별나 식초병 없는 식탁은 상상할 수 없는 고장이다.

#장면3: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비집 100g에 50만원이면 싼 편이다. 요리 맛은 글쎄다.

산둥 특산인 해삼과 대파로 만든‘총소해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산둥 특산인 해삼과 대파로 만든‘총소해삼’.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 장면 모두 화베이요리 이야기다. 황허(黃河) 중·하류 일대의 화베이는 베이징·톈진직할시와 산둥·산시(山西)·산시(陝西)·허베이·허난성 일대다. 내 아버지 고향은 톈진서 가까운 황허 하류다. 어린 시절 툭하면 강이 넘쳐 물길이 따로 없었단다. 자료를 찾아보니 황허는 지난 2500년 동안 1500번 넘게 넘쳤다. 경로가 26번 바뀌었고 그중 9번은 지도가 달라졌다. 물길은 남북을 700㎞ 이상 오르내리며 도시를 통째로 삼키기도 했다. 언덕에 있던 카이펑(開封) 카이바오쓰 철탑은 900여년이 지난 지금 평지에 서 있다. 땅 아래는 북송을 비롯한 옛 왕조들의 도읍이 시루떡처럼 쌓여있다. 지금 황허는 한 해 300일 이상 바닥을 드러내지만, 당시에는 거란의 남하를 막을 만큼 장대하고 위험한 강이었다. 범람은 재앙이지만 한편으로는 축복이었다. ‘물 1석에 진흙 6말’이라는 말처럼 한 해 16억t씩 황토를 날라 곡창 화베이평원을 만들었다. 밀과 수수를 비롯한 중국 곡물 20%가 여기서 나온다.

노(魯)나라가 있던 땅이라 산둥요리를 루차이(魯菜)라고도 한다. 내륙의 지난차이(濟南菜), 해안의 자오둥차이(膠東菜)가 양대 기둥이다. 공자 가문 음식인 쿵푸차이(孔府菜)는 역사 깊다. 중국 최대 채소생산 기지 산둥의 채소는 1만종이 넘는다. 대파 명산지인 지난시 장추는 매년 대파문화관광제를 열어 어느 집 파가 제일 큰지 겨룬다. 지난해 1등은 2.44m, 2020년에는 2.532m였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볶은 재료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얹어내는 당초(糖醋) 조리법이 폭넓게 쓰인다. 돼지 안심으로 만드는 당초리척(糖醋里脊)은 탕수육 원조다. 구전대장(九轉大腸)은 돼지 곱창을 양념으로 졸여 만든다. 해삼요리 총소해삼(葱燒海蔘), 새우요리 홍소대하(紅燒大蝦), 생선살요리 조류어편(糟溜魚片)이 널리 알려졌다. 발사지과(拔絲地瓜)는 고구마 맛탕 비슷한데 사과나 바나나로도 만든다. 한국에서도 현지 발음 ‘빠쓰’라 불리기도 한다. 청탕유엽연채(清湯柳葉燕菜)는 제비집으로 끓인 맑은 탕이다. 금사연(金絲燕)이라는 바다제비가 되새김질한 해초로 지은 둥지를 쓴다. 명나라 때 더저우에서 유래한 덕주배계(德州扒鷄)는 닭구이의 원조다. 산둥전병(山東煎餠)은 밀가루 피에 대파·두부·나물 등을 넣고 매운 두반장이나 면장을 발라먹는다.

베이징요리(京菜)는 기름기 풍성한 튀김과 볶음이 많다. 베이징오리는 명나라 영락제가 난징에서 천도할 때 묻어갔다. 첨면장에 찍어 먹는 바삭한 껍질이 일품이다. 고기는 사실 기름이 쫙 빠지고 밑간이 안 된 훈제 닭처럼 별맛이 없다. 1864년에 문 연 취안쥐더(全聚德)가 가장 오랜 가게다. 중국 권력자들은 물론 부시 부자, 콜, 카스트로, 옐친, 아라파트 같은 해외 정상들도 다녀갔다.

청나라 왕실 요리 만한전석(滿漢全度)은 호화판의 극치다. 만주족과 한족이 형제처럼 지내자는 뜻으로 각지 요리가 많게는 180가지가 나온다. 제대로 된 기록이 없어 논란도 많다.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사치를 죄악시한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맥이 희미해졌다. 요즈음은 지역 코스요리를 모아놓고 만한전석이라고 광고하는 곳이 많다.

화베이의 주식은 밀가루 음식이다. 산둥에서 출발한 작장면(炸醬麵)은 한국 짜장면과 뿌리가 같지만 각자 길을 걸어 왔다. 중국에서 만두(饅頭)는 한국과 달리 소가 없는 흰 빵을 말한다. 교자(餃子)는 물만두, 포자(包子)는 고기만두라고 보면 된다.

57획으로 이뤄진 한자 ‘뱡’

57획으로 이뤄진 한자 ‘뱡’

면 하나로 백 가지 음식을 만든다(一樣麵 百樣食). 황허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산시(山西·陝西)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산시(山西)는 밀가루 반죽을 칼로 깎아 끓이는 도삭면 성지다. 또한 식초의 고향(醋鄕)이기도 하다. 물이 좋지 않은 황토고원지역이라 기원 전부터 식초를 만들었다. ‘식초가 있으면 쌀겨도 먹지’ ‘참기름 향기는 1리, 식초 향기는 10리’ ‘밥통은 버려도 식초병은 못 버려’ 같은 말이 흔하다. 노진초(老陳醋)가 소문났다.

산시(陝西)의 중심 시안(장안)은 13개 왕조의 도읍이었다. 마오쩌둥이 대장정을 마친 옌안(延安)이 가깝다. 3000년 넘는 내력의 조자면(臊子麵)은 기산(岐山)면을 으뜸으로 친다. 면발이 길수록 좋은 솜씨로 여긴다. 한국 냉면집에는 가위가 있지만, 중국에서 면을 자르면 명 짧아진다고 경을 친다. 뱡뱡면이 재미있다. 1m 길이의 수타 면발이 허리띠처럼 넓다. 2014년 시진핑 주석과 롄잔 타이완 국민당 명예주석 만찬에 나왔다. 두 사람 아버지가 섬서 출신이다. ‘뱡뱡’은 면 뽑을 때 반죽이 도마에 부딪치는 소리일 텐데 한국말로 ‘팡팡’쯤 되겠다. ‘뱡’은 57획으로 획수가 가장 많은 한자다.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으며 자판으로 칠 수도 없다. 시진핑이 롄잔에게 이 글자를 써 보였다.

허난성에는 낙양수석(洛陽水席)이 있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즐겼다는 연회 요리다. 24가지 코스 모두에 국물이 있다. 돼지고기 튀김인 작자수육(炸紫酥肉), 양 육수로 끓이는 회면(烩麵)도 있다. 당초연유어배면(糖醋软溜魚焙麵)은 황허에서 잡은 잉어요리에 튀긴 면을 올려낸다.

세월 따라 환경 따라 음식도 변해간다. 물길이 달라지면서 톈진 하이허(海河) 명물이던 은어와 게가 자취를 감췄다.

※정리: 안충기 기자. 기사에서 인명과 지명 등 고유명사는 중국어 발음대로 적되, 요리 이름의 한자는 한국어 발음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왕육성 중식당 ‘진진’ 셰프.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가진 중식 백전노장.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낸 서울 서교동의 작은 중식당 ‘진진’이 2016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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