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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도 66% 넘는 ‘습윤폭염’ 기승…더 ‘열’받아 온열환자 급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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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호 02면

‘물 먹은 더위’ 국민 건강 위협

폭염경보가 발령된 4일 서울 여의도 낮 한때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으로, 도심이 불에 달궈진 듯 붉게 물들었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온도가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을 띤다. 이날 서울 지역의 낮 최고기온만 35도에 육박했다. [뉴시스]

폭염경보가 발령된 4일 서울 여의도 낮 한때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으로, 도심이 불에 달궈진 듯 붉게 물들었다.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온도가 높을수록 붉은색, 낮을수록 푸른색을 띤다. 이날 서울 지역의 낮 최고기온만 35도에 육박했다. [뉴시스]

일용직 노동자 신모(65)씨의 이번 여름은 유난히 고달프다. 많은 비가 쏟아졌다. 게다가 많은 땀이 흘렀다. 철근을 메는 신씨의 어깨 위로 맺힌 땀이 주르륵 떨어졌다. 신씨는 “기온 자체는 많이 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땀이 더 많이 난다”고 말했다.

맞다. 서울의 지난 7월 일별 체감온도의 평균은 31.4도. 지난해 31.8도보다 오히려 낮다. 같은 기간 폭염일수도 올해 6일, 지난해 10일로 되레 적다. 그런데 일별 습도의 평균은 올해 71.8%로 지난해 66.7%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았고, 일별로 뜯어보면 습도가 90%를 넘은 날이 지난해는 하루도 없었는데 올해 6일이나 된다. 보다 눅눅한 날이 보다 뽀송한 날을 압도한다. 그래서 신씨를 비롯한 사람들이 올여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물 먹은 더위’의 확장세가 심상치 않다. 이미 기상청은 지난 5월 폭염 특보 발표기준을 ‘최고기온’에서 ‘최고체감온도’로 바꿨다. 그러니까 몸이 33도 이상의 온도를 느끼는 상태가 이틀 넘게 지속하거나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발표한다는 얘기다. 물 먹은 더위로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보통 습도가 오르면 더 덥게 느껴진다. 신체 온도가 오르면 열을 식히기 위해 땀을 배출해야 하는데 주변 습도가 높으면 땀 배출이 안 되고 물속에 갇힌 것처럼 체감온도는 더 오른다. 습도가 10% 오르면 체감온도는 1도 오른다. 습도를 반영한 폭염이 이젠 하나의 기준이 된 것이다.

쪽방촌 거주민·고령층 위험에 노출

이 습도가 지난 3년간 가파르게 올랐다. 평균 습도(7월 기준)는 2021년부터 58%→66.7%→71.8%로 상승했다. 단순 계산으로 지난 7월의 우리 몸은 2년 전보다 1도 넘게 더워진 것이다. 이명인 폭염연구센터장은 “아직 습윤폭염 발생 일수 증가세가 뚜렷하진 않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 점차 증가하고 있는 건 맞다”고 말했다.

‘습한 폭염’은 어떻게 찾아온 걸까. 이현주 APEC기후센터 연구원은 “2000년대 후반부터 고온다습한 공기를 머금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가 한반도의 남서쪽에 더 많이 머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 남서쪽에 걸치게 되면,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된다. 게다가 해양의 뜨거운 수증기가 따라온다. 최근 엘니뇨로 해수면 온도가 달궈져 있어 고온다습한 공기는 보너스가 됐다. 이로 인해 최근 33도가 넘는 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명인 센터장은 “폭염과 열대야가 동시 발생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일용직 노동자 신씨의 고민은 깊어질 예정이다. 물 먹은 폭염이 자주 찾아올 것으로 보이면서다. 폭염 중 상대습도가 66% 이상인 경우를 ‘습윤폭염’이라고 한다. 지난 60여년간(1958~2019년) 한반도엔 습윤폭염이 100번 중 70번 꼴로 찾아왔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최근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습윤폭염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 습윤폭염은 10년 단위로 최대 이틀 정도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2020년 습윤폭염이 10일 발생했다면 10년 뒤인 2030년엔 10+2일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휴, 비가 쏟아져도 왜 이리 더운 거죠?” 지난달 26일 오후 경기도 북부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토바이를 급하게 세워 비를 피했던 배달기사 김모(54)씨는 “비가 그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헬멧 안에선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말했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최근 이례적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시간당 80㎜의 단발성 소나기로 한 번에 많은 비가 내리다보니 더위가 식힐 새 없이 무더위가 지속한다”고 말했다.

폭염은 물을 머금으면 더 위험해진다. 하경자 교수는 “습도가 열을 식히는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올해 온열질환자가 유난히 많은 이유다. 7월 기준 온열질환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1051명에서 1191명으로 140명 증가했다. 사망자 수도 7명에서 13명으로 2배가량 늘었다. 지난 3일까지는 사망자가 19명 발생했고 1년 새 2.7배 늘었다. 대체로 논·밭·공사장 등 야외활동 중 피해가 컸다.

습윤폭염일 때 스트레스도 크다. 신체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정도를 지수화한 열 스트레스 지수(HI)를 보면, 건조폭염은 ‘주의’ 단계에 그친다면 습윤폭염은 ‘극도 주의’ 또는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열 스트레스가 심하면 경제 활동도 어려워져 노동생산성이 저하돼 2030년엔 2조4000억 달러(313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연구 보고서도 있다.

더위 취약계층에게 습윤폭염은 더 두렵기만 하다. 고령층이나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쪽방촌 거주민, 야외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농업종사자·건설현장직과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온열질환자 4명 중 1명이 야외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단순노무종사자다. 지난해 온열질환자 1564명 중 25.3%가 단순노무자였다. 논밭에서 일하는 농림어업종사자도 10%가량 된다.

지역별 세분화된 폭염 대책 필요

“숨이 넘어갈 지경입니다. 장난 아닙니다.” 경북 안동의 김귀동(71·가명)씨는 전화 너머로 숨을 헐떡였다. 밭일하다가 잠시 쉬는 중이라고 했다. 체감온도 35도로 치솟았던 지난달 29일과 30일. 경남 지역에선 80대 남성과 여성이 밭에서 일하다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이들은 폭염으로 인한 사망으로 판정 났다. 같은 기간 경북 예천, 문경, 경산, 상주 지역에서도 밭일을 나갔던 70~90대 고령층의 사망 소식이 이어졌다. 경남과 경북은 지난달 말까지 온열질환자 수가 100명을 넘었고, 총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남부지방의 피해가 두드러지는 이유로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가 걸쳐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령층이 많다. 5명 중 1명이 고령인구일 정도로 고령층이 많은 남부지역은 향후 폭염 위험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 김동현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폭염위험 고령인구 수를 추정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습도, 더위에 익숙한 정도, 고령인구 수 등을 고려했더니, 2037년에는 경남 김해, 경남 창원, 경기 시흥 순으로 폭염위험 인구가 많았다. 김 교수는 “남부지역은 더위에 익숙하더라도 습도가 높아 위험도가 더 높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냥 폭염이 아닌 습윤폭염에 맞는, 지역별로 세분화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동현 교수는 “습도가 지역별로 달라 체감온도, 그리고 견딜 수 있는 최대 온도인 임계온도가 모두 다르다”며 “지역별 핀셋 대책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이명인 센터장은 “현 폭염 주의보, 폭염 특보 내용은 더위 취약계층의 특성이나 지역적 특성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며 “무더위 쉼터, 그늘막 설치 등 일시적 노출 저감을 위한 대책 이외에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이나 노동 여건 개선 등의 폭염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도심에서도 ‘물먹은 더위’를 위한 대처가 필요하다. 건물이 밀집한 도심의 경우 뜨거운 공기를 건물이 가두어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온도는 더 오르게 된다. 동시에 건물이 낮에 햇빛을 흡수하고 밤에 내보내면서 열대야와 같은 야간 기온도 오를 수 있다. 홍진규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건물 옥상에 거울 같은 걸 설치해 열을 반사하는 쿨루프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건물 옥상에 나무를 심는 그린루프의 경우 호주에선 습도가 더 올라 에어컨 등 에너지를 더 많이 쓴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 옆 건물에서 오는 열을 반사하는 페인트를 칠하는 대안도 거론된다.

세계적인 이상기후는 폭염을 장기화할 수 있다. 김동현 교수는 “지금은 폭염기간이 매년 1~2주 정도라 대책도 피해저감 수준에 그치지만, 향후 습윤폭염을 포함한 폭염기간이 매년 4~5주 정도로 늘 수 있어 위험도는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이제는 폭염, 습윤폭염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울러  그만큼 폭넓고 깊이 있는 중장기 대책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다음 주말까지 찜통더위, 도심·해안지역 열대야 지속

지속되는 열대야에 4일 시민들이 서울 중구 청계천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지속되는 열대야에 4일 시민들이 서울 중구 청계천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뉴스1]

한반도 날씨가 찜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분간 찜통더위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다. 숙면의 천적인 열대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말에 이어 ‘세계 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마무리되는 12일까지 체감온도가 35도 내외로 오르며 매우 무덥겠다.

주말 아침 기온은 23~28도, 낮 최고기온은 30~37도가 예상된다. 주말 최고 체감온도는 34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온도가 낮은 이른 아침(오전 5시~8시)에도 습도가 90%까지 오르며 최고 체감온도가 30도에 이르겠다. 다음 주엔 아침 기온이 23~27도, 낮 최고기온은 32~38도로 평년(최저 22~24도, 최고 29~33도)보다 높겠다. 도심지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스카우트잼버리 야영장이 위치한 전북 부안군 하서면은 다음 주 낮 최고기온이 34~35도에 육박한다. 습기를 머금은 지면과 공기 탓에 체감온도는 이보다 1~2도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무더위 속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가끔 구름이 많겠고, 대기 불안정으로 강원 영동에 5~40㎜의 소나기가, 충남, 경북, 경남 등에도 비소식이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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