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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악화·나랏빚 증가·정치싸움…한국도 미국과 닮은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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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5월 22일 미국 백악관에서 연방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협상하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공화당·왼쪽)과 조 바이든 대통령. 피치는 1일 미 정치권이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대치하다 막판에 해결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22일 미국 백악관에서 연방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협상하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공화당·왼쪽)과 조 바이든 대통령. 피치는 1일 미 정치권이 부채 한도 상향을 놓고 대치하다 막판에 해결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국내 증시가 흔들렸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2일 코스피는 2% 가까이 출렁였고, 코스닥은 3.18% 급락했다. 하지만 12년 전 미국의 첫 신용등급 강등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던 ‘후폭풍’이 되풀이되진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1.9% 급락한 2616.47로 장을 마쳤다. 연고점(2667.07)을 찍은 지 하루 만에 2610선으로 밀려났다. 하락 폭은 올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가 이어진 3월 14일(-2.56%) 다음으로 컸다. 코스닥의 낙폭은 더 컸다. 전날보다 3.18% 급락한 909.76으로, ‘천스닥’(지수 1000선 돌파)에서 멀어졌다. 지난달 자금을 끌어모았던 2차전지 관련 주의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코스피 시총 상위 종목 가운데 포스코홀딩스 주가 하락 폭(-5.8%)이 가장 컸고, 포스코퓨처엠(-4.52%)도 4% 이상 하락했다. 미 달러당 원화가치는 1298.5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보다 14.7원 하락(환율은 상승)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날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의 미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은 12년 전 미국의 첫 신용 강등에 따른 악몽을 불러왔다. 미국 S&P500 지수는 2011년 8월 1일 기준으로 두 달 새 15% 가까이 급락했다.

상당수 증시 전문가는 단기 조정은 나타날 수 있지만, 2011년 수준의 후폭풍이 있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은 그리스 디폴트 등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하는 시점이라 미국 신용등급 하향이 불쏘시개가 돼 신용 우려가 더 커졌다”며 “현재 미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견조해 강등 여파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치는 미 재정 상황을 부정적으로 봤다. 고령화 여파 탓이다. 피치는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재정 개혁이 없는 한 고령층에 대한 지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경기에 대해서는 “신용 여건 악화와 투자 감소, 소비 하락이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에 미국 경제를 약한 침체로 밀어넣을 것”이라며 침체 가능성을 제기했다.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이 시장 예상을 웃돈 2.4%(연율 기준)를 기록하는 등 미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이 나온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한국도 향후 국가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비기축통화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감소 추세지만, 한국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여파 등으로 이 비율은 급속도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신용평가사들은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5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통계적 압력이 재정적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비교적 경제 상황이 양호한 미국에 대해서도 재정 악화를 이유로 국가 신용등급을 내릴 만큼 신용평가사들은 국가 재정 상황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신용등급 하향으로 받는 영향이 적지만 한국의 경우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자본 유출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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