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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家 집단 휴가 떠났다…'도넛현상' 생긴 울산의 여름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오후 4시 울산 남구의 한 교차로 모습. 현대 관계사가 집단 여름휴가에 들어가면서 평소 차량으로 북적이던 도로가 한산하다. 김윤호 기자

1일 오후 4시 울산 남구의 한 교차로 모습. 현대 관계사가 집단 여름휴가에 들어가면서 평소 차량으로 북적이던 도로가 한산하다. 김윤호 기자

1일 오전 7시 30분 울산시 남구 태화강역 앞 도로. 평소 명촌교를 거쳐 현대차 울산공장과 현대중공업이 있는 북구와 동구 쪽으로 이동하는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루던 출근 시간이지만 이날 도로는 휴일처럼 한산했다. ‘녹색불’ 신호를 3번 이상 받아야 지나갈 수 있던 ‘명촌교 북단사거리’를 단번에 통과할 수 있을 정도였다. 폭염 특보가 내려진 무더운 날씨이나 차량흐름만큼은 시원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이 위치한 울산 북구 명촌동의 한 식당 입구. 여름휴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윤호 기자

현대차 울산공장이 위치한 울산 북구 명촌동의 한 식당 입구. 여름휴가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윤호 기자

일순간 썰렁해진 '6만불 도시' 울산 도심 

같은 날 정오 찾은 울산시 북구 명촌동. 식당 100곳 이상 몰려 지역에선 ‘먹자골목’ 같은 곳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직원 등으로 붐벼야 할 골목 골목이 텅 비었다. 주차장엔 출입을 막는 로프가 길게 쳐진 곳도 있었다. 삼계탕 식당, 족발 전문점, 추어탕 판매점 등 상당수 가게가 ‘여름휴가 갑니다.’ ‘건강한 휴가 보내세요’ 같은 안내·인사말을 적은 종이를 붙여두고 문을 닫았다.

대단위 현대 사업장들이 휴가에 들어가면서 같이 휴가를 떠난 자영업자들이 상당하다. 한 먹자골목 주차장 입구를 줄로 출입을 막아놓은 모습. 김윤호 기자

대단위 현대 사업장들이 휴가에 들어가면서 같이 휴가를 떠난 자영업자들이 상당하다. 한 먹자골목 주차장 입구를 줄로 출입을 막아놓은 모습. 김윤호 기자

명촌동에서 차로 30여분 달려 도착한 울산시 동구 전하동 일원 식당가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선 현대중공업이 지척이다. 일부 문을 연 카페나 식당이 있었지만, 점심시간인 점을 고려하면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울산 도심이 일순간 썰렁해졌다. ‘6만불 도시’ 울산 경제를 견인하는 현대중공업·현대차 등 대규모 사업장들이 동시에 집단 여름휴가에 들어가면서다. 명절 귀향 인파로 서울 시내가 한동안 텅 비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1일 아침 출근시간인 오전 7시~8시 사이 울산 태화강역 앞 모습. 이곳은 현대차 등으로 출근하는 차량들도 북적이는 곳이다. [사진 울산교통관리센터 실시간 교통 흐름 화면 캡쳐]

1일 아침 출근시간인 오전 7시~8시 사이 울산 태화강역 앞 모습. 이곳은 현대차 등으로 출근하는 차량들도 북적이는 곳이다. [사진 울산교통관리센터 실시간 교통 흐름 화면 캡쳐]

1일 아침 출근시간인 오전 7시~8시 사이 울산 북구 현대차출고장 일대 모습. 이곳은 현대차 관련 차량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사진 울산교통관리센터 실시간 교통 흐름 화면 캡쳐]

1일 아침 출근시간인 오전 7시~8시 사이 울산 북구 현대차출고장 일대 모습. 이곳은 현대차 관련 차량으로 북적이는 곳이다. [사진 울산교통관리센터 실시간 교통 흐름 화면 캡쳐]

현대중공업 등 10일까지 동시 '쉼'

근로자 1만2000명 규모인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공장 문을 닫고 휴가에 들어갔다. 현대미포조선(직원 3100명)도 같은 휴가 일정이다. 3만20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현대차 울산공장 역시 일정을 맞춰 생산 라인 가동을 멈추고, 여름 휴가를 즐기고 있다. 자연히 울산 북구 효문·매곡공단, 경북 경주 외동공단에 있는 현대 협력업체 300여곳, 10만여 명의 근로자도 동시에 피서를 떠났다.

울산의 전체 인구는 110만명 수준. 이들 인구의 3분 1 정도인 30만명 이상이 현대중공업·현대차 등 현대 관련 종사자와 그 가족이다. 이에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울산지역 소상공인 상당수도 동시에 쉰다. 울산의 한산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울산시는 지난달 말부터 시내버스를 줄여 운행 중이다. 183개 노선 928대의 시내버스 중 45개 노선, 49대를 감차(17일 종료)했다.

현대가 집단 휴가에 맞춰 휴가를 떠난 자영업자. 출입문에 휴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울산=김윤호 기자

현대가 집단 휴가에 맞춰 휴가를 떠난 자영업자. 출입문에 휴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울산=김윤호 기자

현대 맞춰 인근 상가도 동시 휴가

울산 남구 신정2동에서 한식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모(67)씨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차의 집단 여름휴가에 맞춰 우리 가족도 휴가를 매년 간다”며 “동네 목욕탕과 헬스장, 택시기사 등도 이때 많이 쉰다”고 말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현대차 2교대 시간인 오후 3시 30분 이후엔 늘 북적이는 남구 삼산동 술집 골목도, 주말엔 북새통을 이루는 백화점과 명품관 등도 평소 인파의 3분 1 수준으로 줄어든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경남 양산에서 울산에서 출·퇴근하며 방문 미술교사를 하는 김보민(30·여)씨는 “기업의 집단 여름휴가, 그리고 이에 따라 도시가 텅 비는 모습이 낯설지만 신기하다”면서 “울산에서 현대가 차지하는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울산 도심의 공동화 현상에 따른 범죄를 예방하려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음주단속 자료사진. [연합뉴스]

경찰이 울산 도심의 공동화 현상에 따른 범죄를 예방하려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음주단속 자료사진. [연합뉴스]

뻥 뚫린 '도넛 현상', 경찰은 순찰 강화 

경찰은 ‘도심 공동화 현상’에 따른 범죄 발생을 우려해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도심 공동화는 인구감소 등 영향으로 도심 내 주거·상업·업무 기능이 외곽으로 빠져 기존 도심 기능이 크게 약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운데가 비었다고 해 ‘도넛 현상’으로도 부른다. 휴가철 반짝 공동화 현상이나 경찰은 빈집이 많은 주택가와 현대중공업·현대차 주변 먹자골목 등지의 순찰 횟수를 늘리고, 시내 유흥가 주변에선 음주운전 단속도 수시로 진행 중이다.

제지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이진형(35·울산 남구)씨는 “현대 종사자와 그 가족이 더위를 피해 빠져나가면 울산 도심은 썰렁해지지만 외지인이 찾는 북구 정자해변, 동구 일산해수욕장 일대는 피서객들로 북적인다”며 “이럴 때면 잠깐이나마 울산의 도시 주인이 바뀌는 듯한 이색적인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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