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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붕괴 아파트도 무량판 구조…"우리 집은?" 293곳이 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일 경기 오산시 청학동 오산세교2 A6블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 중 철근 누락 15곳 아파트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이 단지는 보강 철근 필요 기둥 90개 중 75개가 철근이 미흡하게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1

1일 경기 오산시 청학동 오산세교2 A6블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 국토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개 단지 중 철근 누락 15곳 아파트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이 단지는 보강 철근 필요 기둥 90개 중 75개가 철근이 미흡하게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공공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철근 누락'이 만연한 것으로 확인되자 정부는 민간아파트로 점검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1일 국토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전수조사 대상으로 밝힌 2017년 이후 준공한 전국 민간아파트 가운데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는 293개다. 105개 단지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며, 188개 단지는 이미 입주를 마쳤다. 이 가운데는 지하주차장뿐만 아니라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가 일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전수조사한 LH 아파트 91개 단지 중 철근 누락이 나타난 15곳은 지난 4월 붕괴 사고가 일어난 인천 검단 아파트처럼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사용했다. 원희룡 장관은 지난달 31일 긴급 브리핑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LH 아파트는 무량판을 적용한 지하주차장의 기둥 부위에 해당하고, 지하주차장 상부에 건물이 없어 주거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아파트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사용한 곳이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해 1월 붕괴 사고가 일어난 광주 화정 아파트도 주거동에 무량판 구조를 채택했다.

국토부는 이달 중 293개 아파트 단지에 대한 점검에 들어갈 예정인데, 만약 조사 결과 문제 단지가 나타날 경우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벌써 부실 공사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입주한 경기 광명시 아파트에 사는 박모씨는 “우리 집도 정부의 점검 대상에 포함되는지 궁금하다”며 “안전하다는 확인을 받을 때까지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기 무서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무량판 구조 자체의 안전에 대해서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무량판 구조는 보(beam·대들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를 바로 얹는 방식이다. 일단 보를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유리하고 시공비, 공사 기간 절감 등의 잠정이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무량판 공법은 오래전부터 장점이 입증돼 널리 쓰이는 공법”이라며 “특히 보가 없어 높이가 높은 차량 출입이 가능해 2017년 이후 국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다수 도입됐다”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제대로 설계·시공하지 않을 경우 붕괴 위험도 크다. 기둥과 맞닿는 부위에 하중이 집중되면 슬래브에 구멍이 뚫리며 붕괴하는 펀칭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이를 보강하기 위한 전단보강근 등에 대한 철저한 시공이 필수적이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공법 자체의 문제보다는 설계·시공·감리 단계에서 제대로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무량판 구조에 대한 철저한 이해도 필요한데, 이번 철근 누락과 붕괴 사고는 현장 근로자에 대한 건설사의 교육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 등이 철근 배근을 맡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무량판 구조 민간아파트에 대해서 주민이 추천하는 안전진단 전문기관을 통해 점검할 계획이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무량판 구조 민간아파트의 안전점검 비용을 주택업계에서 부담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며 “모든 아파트 공사에는 하자보수 예치금인 총공사비의 3%가 남아 있어 그 비용을 통해 보수·보강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만 입주가 완료된 단지는 하자보수 예치금을 사용할 경우 입주민 동의가 필요하다.

집값이 내려갈 수 있다는 이유로 철근 누락 사실이 공개를 꺼리는 주민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실제 LH 관계자는 “철근 누락 단지명을 공개하려 하자 정도가 심하지 않은 몇몇 곳에서는 단지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점검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시공사, 시행사 등을 향한 각종 소송전이 진행될 가능성도 크다. 철근 누락이 발견된 파주 운정 임대 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집단소송을 하자는 얘기가 입주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민간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하자 건설사들도 긴장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임원은 “무량판 구조로 시공된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에 대해서도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며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다들 숨죽인 채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업체는 이미 지난 4월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서둘러 자체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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