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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 기념 촬영의 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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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2년 전 봄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로 한·일 정상을 부르고 싶어했다. 일본 초계기 위협, 무역 갈등으로 양국 관계는 최악이 이어지던 상황이었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을 배경으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손잡고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하길 원했다고 한다.

1978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 네 번의 전쟁으로 불구대천이 된 이집트와 이스라엘 정상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활짝 웃는 카터 앞에서 이들이 악수하는 사진은 역사의 한 장면이 됐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회동에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왼쪽)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지미 카터 도서관]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회동에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왼쪽)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지미 카터 도서관]

백악관은 ‘제2의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위해 스가 총리를 먼저 워싱턴에 초청하고, 바로 이어 문 대통령을 부르는 방안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겹치는 기간, 자연스럽게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날 수 있게 말이다.

결국 일정 조율이 안 돼, 스가 총리는 4월 초, 문 대통령은 5월 중순에 방미했다. 3자 회동은 불발됐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얼마나 캠프 데이비드 회동을 바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78년 회동의 주역들은 모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올 때는 각자 속내가 있었다. 미국은 오일쇼크로 무너진 경제를 안정시켜야 했고,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빼앗긴 시나이반도를 되찾으면서 서방의 차관을 끌어와야 했다. 이스라엘은 첨단 무기 지원이 필요했다. 판이 깨질 위기도 있었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렀고, 셋 모두 노련한 정치인답게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그러나 완벽한 평화를 정착시키기엔 부족함이 많았기에 일각에선 “노벨상이 아니라 오스카상 감”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오는 18일 바이든이 그토록 바랐던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곳으로 향하는 미·일 두 나라의 노림수는 분명해 보인다. 내년 재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에 맞서 두 동맹의 협력을 끌어낸 자신의 외교력을 국내외에 뽐낼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 입장에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지지를 끌어낼 절호의 기회다. 벌써 일본 외무성은 “처리수(후쿠시마 오염수의 일본식 표현)에 대한 허위 정보 확산 방지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바람을 잡고 있다.

반면 한국이 뭘 챙겨갈지는 불분명하다. 일부 언론 평가대로 ‘이 자리에 초청된 것만으로도 미국의 핵심 파트너로 인정받은 것’이란 자기만족은 워싱턴에서 보기 민망하기만 하다. 오스카상 감 사진에 그쳤단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도 가시적인 성과를 챙겨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