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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 도면으로 철근 82% 누락…'순살 아파트' 15곳 명단 공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철근 누락’ 사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층 도면으로 철근(전단보강근)을 배근해 전체 82%의 철근이 누락된 사례가 있는가 하면 설계 과정에서 구조계산이 누락되면서 전단보강근이 전부 빠진 단지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간담회를 열고 전날(30일) 발표했던 ‘전단보강근’ 누락 단지 15곳의 단지 이름과 설계·시공·감리에 참여한 기업들의 정보, 단지별 누락원인과 보강방법 등을 전부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부실 공사에 대해 전수조사하고, 즉시 안전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조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LH 무량판 구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LH는 지난 4월 29일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직후인 5월 3일부터 전국의 LH 아파트 중 검단 아파트처럼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91개 단지에 대해 비파괴검사 등을 동원해 안전점검을 했다. 결과는 15개 단지에서 전단보강근이 빠진 것을 발견했다. 10곳은 설계 단계부터 전단보강근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5곳은 시공 과정에서 설계도면대로 전단보강근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단보강근 누락 단지 중 공사가 끝난 단지는 9곳이며, 현재 공사 중인 단지는 6곳이다. 준공 완료 단지 중에는 입주가 끝난 단지가 5곳, 입주가 진행 중인 단지가 4곳으로 나타났다. 분양 아파트 5곳, 임대 아파트 10곳으로 임대 아파트 비중이 다소 높았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수서역세권, 경기 남양주별내 등 수도권 8곳과 지방 7곳이었다. 철근 누락이 나타난 시공사 명단에는 DL건설을 비롯해 대보건설, 동문건설, 삼환기업 등 중견 건설사들이 포함됐다.

누락 정도는 단지별로 차이가 있었다. 양주회천 A15블록은 구조계산 오류로 인해 전단보강근이 설치돼야 하는 무량판 부분 기둥 154개소 전체에서 누락된 게 확인됐다.

남양주별내 A25블록과 음성금석 A2블록에서는 다른 층의 도면으로 엉뚱한 층의 배근이 이뤄지면서 수백 곳의 전단보강근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양주별내 A23블록은 302개 기둥 중 126개(42%), 음성금석 A2블록은 123개 기둥 중 101개(82%)에서 철근이 빠졌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 인천 검단 아파트의 경우에는 지하주차장 기둥 32개 중 최소 19개(60%) 기둥에 전단보강근이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입주 단지 시멘트 강도 높아 전면 재시공 갈 상태 아니다"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는 무게를 버티는 보가 없고 기둥에 슬래브가 바로 연결된 형식이다. 이 때문에 기둥이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전단보강근 설치가 필수적이다. LH는 비용 절감을 위해 2017년부터 지하주차장 공사에 이 공법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이번 사태는 설계·시공·감리와 이를 통제할 LH 등의 총체적인 잘못”이라고 말했다.

LH는 문제 단지에 대해 지하주차장 내에 기둥을 새롭게 설치하거나 기존 기둥에 슬래브 등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보강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일부 입주민들이 검단 아파트처럼 지하주차장을 포함한 단지 전체의 재시공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한준 사장은 “다행히 이미 입주한 단지의 경우 시멘트 강도는 기준치보다 높기 때문에 전면 시공까지 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원희룡 장관은 “이번에 문제가 된 LH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상부에 건물이 없어 주거 부분에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과거 관행적으로 있던 안전불감증, 그로 인한 부실시공 일체를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철저히 조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민간아파트 점검도 진행할 예정이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무량판 공법으로 시공 중인 현장은 전국에서 105곳이며,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곳으로 파악했다”며 “주민들이 추천하는 안전진단 전문기관을 통해서 안전점검을 할 것이고,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즉시 안전전문진단을 통해서 보수·보강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 원 장관은 "LH뿐만 아니라 민간 건설사를 둘러싼 총체적인 이권 카르텔을 끝까지 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검단 신도시 주차장 붕괴사고는 LH의 전관 특혜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전단보강근 누락 15개 단지 가운데 8개 단지의 감리업체가 LH 퇴직 직원이 재취업한 일명 '전관업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 의원은 최근 5년간 LH 사업비 상위 10곳 공사현장의 감리회사 가운데 8곳도 LH직원이 재취업한 전관업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한준 사장은 “설계·시공·감리 등의 업체에 LH 출신 직원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며 “앞으로 LH 사업에 입찰하는 경우 LH 전관 명단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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