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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토지개혁 아이디어 어디서 왔나…‘한국 분단 보고서’ 재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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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반도 분단 시기 미 군정 역할을 살펴볼 수 있는 『한국 분단 보고서』를 세 권으로 확대 재출간한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장세정 기자

한반도 분단 시기 미 군정 역할을 살펴볼 수 있는 『한국 분단 보고서』를 세 권으로 확대 재출간한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장세정 기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기밀 해제 자료를 토대로 쓴 『한국 분단 보고서』(선인, 이하 『보고서』·사진)가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7월 27일) 70주년에 맞춰 세 권으로 확대 재출간됐다. 한반도 분단의 결정 과정, 미 군정의 통치 목표와 구조 등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보고서』는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을 역임한 신복룡(81) 전 건국대 석좌교수가 NARA에서 입수한 자료를 김원덕 박사와 함께 1992년 도서출판 풀빛에서 상·하권으로 출간한 적이 있다. 31년 만에, 절판됐던 책을 재출간했다.

『한국 분단 보고서』

『한국 분단 보고서』

『보고서』는 기밀 해제된 NARA의 극비 자료 20건을 찾아 전문을 번역하고 주석해 현대사 연구의 1차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이번 판본에는, 기존의 상·하권에 없는 미국 정부의 기밀 해제 문서가 다수 실렸다. 예컨대 2권에는 한국 현대사 연구에서 비밀의 열쇠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애치슨 연설문’(1950)을 비롯해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글들이 여러 편 실렸다. 영국의 역사 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1945년에 쓴 ‘한국의 독립 능력에 관한 보고서’도 주목할 만하다. 1948년에 작성된 ‘주한 미군정(USAMGIK)의 구조’, 4성 조정위원회가 작성한 ‘미국의 대한 정책’도 눈길을 끈다. 1950년 6·25전쟁 와중에 미군이 노획한 북한군 문서도 들어 있다.

3권은 기존 상·하권에 없던 내용으로만 채웠다. 미 군정청 경제 고문으로 활동한 아더 번스가 작성한 ‘한국은 자유 국가가 될 수 있을까’를 보면 이승만 정부의 토지(농지) 개혁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역사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1947년 미군 24군단 정보참모부가 작성한 ‘좌익 정당 실태 보고서’와 ‘한국 노동운동사’도 흥미롭지만, 특히 ‘여운형 암살 보고서’를 보면 암살의 최종 지시자가 누구인지 퍼즐을 맞춰 볼 수 있다. 1950년 4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작성한 ‘안보 각서 68호’와 부속 문서에는 6·25전쟁의 비밀이 담겨 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매파들이 6·25전쟁 불과 두 달 전에 작성한 이 보고서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대규모 방위비 증액의 기회로 포착해 활용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보고서』에 번역돼 실린 미국 문서들은 신 전 석좌교수가 1985·86년 NARA에서 일일이 찾아내 복사한 자료들이다.

신 전 석좌교수는 “우리의 현대사 연구는 체험과 그에 따른 비분강개를 바탕으로 쓰인 결함을 안고 있다”며 “자료를 혼자만 보는 한국 사학계 풍토에서 황혼 길에 번역·공개하는 이번 기밀 자료들이 현대사 연구의 미궁과 왜곡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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