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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좋은 일 축하만 해줘도 복 짓고, 악플 달면 복 까먹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불교계 아이돌’ 광우스님

서울 서초동 BTN불교TV 스튜디오 뒤 산책로에서 광우스님이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다. 최영재 기자

서울 서초동 BTN불교TV 스튜디오 뒤 산책로에서 광우스님이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다. 최영재 기자

“여러분,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복을 지으십시오. 선업을 지으십시오. 공덕을 쌓으십시오.”

BTN불교TV의 ‘소나무(소중한 나, 무한 행복)’를 8년째 진행하는 광우스님이 꼭 하는 마무리 멘트다. ‘소나무’는 불교 관련 프로 중 시청률 부동의 1위다.

동자승 같은 동글동글한 외모의 광우스님은 불교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는 ‘스토리텔러’이자 ‘불교계 아이돌’로 불린다. 그는 생활 속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에 “개꿀” “대박사건” 같은 유행어도 섞으며 청중과 소통한다. “제가 머리만 안 깎았어도 여자분들 여럿 울렸을 얼굴”이라고 농담을 던진 뒤 “웃자고 하는 얘기”라고 눙치기도 한다. 지루할 틈이 없고 울림도 큰 그의 법문은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도 고정 팬이 생길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광우스님은 유튜브 헬로붓다TV에서 ‘생활 속 기도법’을 진행하고 있으며, BTN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87만을 돌파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전국 사찰의 ‘일요법회 초청 1순위’로 꼽히는 광우스님은 서울 경복궁 옆 법련사에서 지도법사로, 합천 해인사의 상임포교사로 일하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BTN 스튜디오에서 광우스님을 만났다.

남 찌르는 건 내 눈물이 굳은 ‘얼음송곳’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번뇌가 더 심해진 것 같은데요.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면서 화가 늘고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나에 대한 집착과 이기주의가 강해진 거죠. 전에 없던 갑질문화 같은 게 생겼고, 학교에서도 왕따나 빵셔틀처럼 폭력이 일상화되는 것 같습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일 것처럼 분노하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는 거고, 그래서 남한테도 날카롭게 대하는 것 같아요.”
『가시를 거두세요』라는 책도 쓰셨죠.
“군종병으로 일할 때 유독 언행이 꼬이고 뾰족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수행하고 심리학 공부도 하면서 ‘남을 찌르는 가시는 내 스트레스, 아픔, 화, 상처가 굳어진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괴롭고 슬퍼서 흘린 눈물이 이슬로 승화된 게 아니라 얼음가시가 돼 버린 거죠. ‘이제 그만 녹이시고 평화를 되찾으세요.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런 감정으로 책을 썼습니다.”
번뇌와 짝을 이루는 말이 ‘망상’인데요.
“불교에서는 번뇌망상을 ‘원래 없는데 스스로 일으킨 것’이라고 보고, 이를 ‘착각’이라고 정의합니다. 본래 없다는 게 완전히 없다는 건 아닙니다. 꿈과 같은 거죠. 꿈에서 귀신도 보고 고통도 당할 수 있지만 깨고 나면 실체가 없는 거잖아요. 그걸 누가 만들었죠? 내 마음이죠. 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선지식’들이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압축하면 마음 심(心)’이라고 하셨어요. 마음을 깨쳐서 번뇌망상을 없애려는 것이 수행입니다.”
스님께서는 늘 “복을 지어라”고 하시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복이란 뭔가요.
“복은 선업(善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업은 에너지예요. 불교에서는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하는 행위를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착한 행위, 나쁜 행위,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행위. 몸·말·생각으로 일으킨 모든 행위가 에너지가 되어서 우리의 무의식에 저장이 된대요. 착한 행위의 에너지는 선업, 나쁜 행위의 에너지는 악업인데, 선업은 행복으로 돌아오고 악업은 불행으로 돌아온다는 게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자신이 지은 업은 반드시 자신이 받게 됩니다. 그게 자업자득(自業自得)이죠. 결국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원인’ 즉 복을 지으라는 얘기죠.”
복을 짓는 방법이 보시(布施)인가요.
“그렇죠. 재물을 나누는 게 재보시, 부처님 법을 널리 알리는 게 법보시인데요. 저는 무외시(無畏施)에서 불교의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무외시는 ‘두려움을 없애주고, 타인을 편안하게 해 주는 보시’라는 뜻입니다. 이건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어요. 부처님이 ‘상처를 묶었던 헝겊의 실 한 오라기를 보시해도 공덕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것마저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제자가 묻자 ‘누군가 착한 일을 하거나 보시를 하는 걸 보면서 함께 기뻐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공덕을 얻게 된다’고 하셨어요. 얼마나 멋집니까.”
돈 없이 할 수 있는 보시는 뭐가 있나요.
“화안시(和顔施)는 편안한 눈빛과 표정을 짓는 거고, 언시(言施)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겁니다. 상좌시(床座施)는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분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거고요. 언시를 위해서는 남의 뒷담화를 되도록 하지 말고 악플 다는 건 절대 피해야 합니다. 복 짓는 걸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일상에서 좋은 말 하고 작은 친절 하나 베푸는 것, 이웃의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축하합니다’라고 박수쳐 주는 게 바로 복을 짓는 겁니다.”
복 짓는 것의 반대가 ‘복 까먹는 것’이라면서요.
“복 받으려고 가는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서 복 까먹는 분들이 꽤 있어요. 절에 가면 노보살님들이 좌복(방석)을 두세 개씩 깔고 앉거나 좌복에 가방 놓고 자리 맡아놓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게 복 까먹는 겁니다.”
스무 살 때 해인사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은 뒤 부친 도광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 광우스님은 “당시엔 많이 말랐고, 성격도 날카로웠다”고 했다. [사진 광우스님]

스무 살 때 해인사 행자생활을 마치고 사미계를 받은 뒤 부친 도광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 광우스님은 “당시엔 많이 말랐고, 성격도 날카로웠다”고 했다. [사진 광우스님]

광우스님은 열아홉에 해인사에서 머리를 깎았다. 일곱 살 때 부친(도광스님)이 출가를 했는데 당시 어머니가 엄청 좋아하시면서 “빨리 가시라”고 했단다. 중학생 때는 무협지 작가가 꿈이었고, 고교 때는 철학에 빠졌다고 스님은 말했다. 대입을 준비할 즈음 아버지가 “파란만장한 속세를 떠나 수행하고 사는 게 너무 좋다. 너도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아들은 “네, 그러겠습니다”고 했다.

광우스님이 ‘믿거나 말거나’라며 출가에 얽힌 얘기를 들려줬다. “아버님이 100일 산기도 용맹정진을 할 때였어요. 한밤중에 환한 영상이 펼쳐지는데 덩치 큰 노스님 무릎 위에서 동자승이 놀고 있더래요. 몇 년 뒤 제가 해인사에서 행자 생활 마치고 찾아가서 3배를 올렸더니 아버님이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환상에서 봤던 동자승하고 얼굴이 똑같다고요. 이런 게 인연인가 봅니다. 하하.”

대입 직전 아버지 스님 권유로 출가

출가한 걸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가끔씩 있었죠. 생각한 것과 현실이 너무 다른 겁니다. 세속이 싫어서 산속에 들어왔는데 산속에 또 다른 세속이 있더라는 거죠. 수행을 하면 할수록 제 부족함과 탐욕·성냄·어리석음이 보이면서 이럴 바에야 내려가는 게 낫겠다 싶은 적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이 번뇌망상 가득한 중생이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수행하셔서 저렇게 위대한 스승이 되셨지’ 하는 마음으로 초발심을 되새겼습니다.”
스님의 개그 코드는 어디서 나오나요.
“어릴 적 별명이 ‘촉새’였어요. 하하. 외할머니가 ‘우리 외손주는 커서 말로 먹고 살 거다’고 하셨대요. 저도 처음에는 수준 높은 강의랍시고 했는데 신도들이 자꾸 졸고, 불교가 너무 어렵대요. 시행착오를 통해서 얻은 결론이 스토리텔링입니다. 납량특집 ‘전설의 고향’을 보면서는 아무도 안 졸잖아요. 팔만대장경이야말로 스토리텔링의 보고예요. 2600년 불교 역사 속 큰스님들과 불자님들의 생생한 스토리에 제가 양념을 탁탁 쳐서 전달했더니 호응이 폭발적이더라고요.”
“불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강조하시죠.
“불교를 지식이나 철학 차원에서만 받아들이는 분이 많아요. 사는 게 힘들고 괴로워서 절을 찾는 분들에게 좋은 얘기만 하면 큰 도움이 안 돼요. 인생의 절벽에서 순수한 믿음을 갖고 간절하게 염불하고 기도했더니 기적적인 체험을 한 사례가 너무 많아요. 스님인 저조차도 ‘이걸 믿어야 하나’ 싶은 영험담을 수백 가지나 직접 보고 들었어요.” 

“지혜롭게 살려면 뭘 하면 됩니까” 물었다. “운동하세요. 뇌가 건강해집니다. 책을 읽으세요. 지혜가 커집니다. 명상하세요.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미소 지으면서 “아 좋다” 되뇌며 명상하면 마음 편해져

광우스님은 불교의 여러 수행법 중 명상을 적극 추천하며 세 가지 명상법을 소개했다. 수식관(數息觀) 명상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가부좌를 틀든 의자에 앉든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어깨에서 힘을 뺀다. 편안하게 호흡을 들이쉰 뒤 내쉴 때 ‘하나~’를 붙인다. 그 다음 내쉴 때 ‘둘~’, 이런 식으로 ‘열’까지 숫자를 붙인 뒤 ‘하나’로 돌아간다. 30분 이상 숫자를 놓치지 않고 집중하면 극도의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 정도면 굳이 숫자를 붙이지 않고,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만 바라보면 된다. 하다 보면 강한 빛을 보는 등 다양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데, 더 깊이 들어가 호흡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면 상당히 깊은 삼매에 든 거라고 한다.

수식관 명상이 좀 어려운 분에게는 자비 명상을 권한다. 숨을 들이쉰 뒤 내쉬면서 ‘나 자신이 행복하기를’이라고 뇐다. 익숙해지면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하고, 더 깊어지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 행복하기를’까지 간다. 그 사람이 정말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 트라우마와 상처에서 벗어나게 된다.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과 통하는 부분이다.

광우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게 미소 명상이다. 숨을 들이쉴 때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짓고, 내쉴 때 ‘아, 좋다’ ‘진짜 좋다’고 되뇌는 것이다. 이 명상을 통해 정말 마음이 편안해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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