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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가장해 불법영업 찍은 증거는 위법? 원심 깬 대법의 반전

중앙일보

입력

2020년 8월 제주의 한 일반음식점에서 열린 불법 파티 현장. 연합뉴스

2020년 8월 제주의 한 일반음식점에서 열린 불법 파티 현장. 연합뉴스

특별사법경찰 A씨는 2020년 3월 7일 새벽, 사복 차림으로 전북 전주시의 한 음식점에 찾아갔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였는데 해당 음식점이 음악을 틀고 손님들이 춤을 추는 등 나이트클럽처럼 운영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식품위생법 44조는 유흥시설을 제외한 식당에서 노래 또는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구는 접객행위를 금지한다.

손님들 사이에 섞여 앉은 A씨는 음악이 나오자 사람들이 일어나 몸을 흔드는 장면을 촬영했다. 그리고 미리 작성한 현장확인서 초안에 음식점 직원의 서명을 받고 자리를 떴다. 이렇게 음식점 업주 B씨는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정작 1·2심 재판부는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소 사실을 입증하는 주요 증거로 쓰인 A씨의 촬영물이 ‘위법 수집 증거’라는 이유였다. 식품위생법 22조 3항은 “영업시설을 출입·검사하려는 공무원은 그 권한을 표시하는 증표 등이 기재된 서류를 관계자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A씨가 이런 절차를 지키지 않고 손님인 척 음식점 내부를 촬영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형사소송법 308조의 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지난 2016년 10월 11일 중구청 위생과 직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 일대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가격미표시·원산지 허위기재 등 불법영업행위 한 음식점을 단속하고 있다. 한 음식점 관계자가 위생과 직원들이 적은 개선사항 확인증에 서명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지난 2016년 10월 11일 중구청 위생과 직원들이 서울 중구 명동 일대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가격미표시·원산지 허위기재 등 불법영업행위 한 음식점을 단속하고 있다. 한 음식점 관계자가 위생과 직원들이 적은 개선사항 확인증에 서명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그러나 이런 원심의 판결은 잘못됐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13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A씨는 적법하게 증거를 수집했다”며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식품위생법 22조 3항에 따라 권한을 표시하는 증표 등의 서류를 제시해야 하는 경우는 식품 또는 영업시설 등에 대하여 검사하거나, 장부 또는 서류를 열람하는 등 행정조사를 하려는 경우에 한정된다”며 “범죄 수사를 위하여 음식점 등 영업소에 출입하여 증거수집 등 수사를 하는 경우에는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가 영장 없이 범죄 현장을 촬영한 게 위법한지에 대해서도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달랐다. 원심은 “손님을 가장하여 가게 내부를 촬영하며 증거를 수집한 행위는 피고인의 동의나 승낙 없이 피고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강제수사”라며 “강제수사는 원칙적으로 사전에 영장을 발부받아 이를 제시한 후 집행하여야 하는데, A씨는 그러지 않았다”고 봤다.

반면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면서 현재 범행이 행하여지고 있거나 행하여진 직후이고, 증거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는 데다,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방법으로 촬영한 경우라면 영장 없이 촬영이 이루어졌다 하여 이를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며 “A씨는 범죄혐의가 포착된 상태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 범행에 관한 증거를 보전하기 위해, 공개된 장소인 음식점에 출입하여 음식점 내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었던 손님들의 춤추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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