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위원장 황정근)가 ‘수해 골프’ 논란을 일으킨 홍준표 대구시장에 ‘당원권 정지 10개월’ 중징계를 내렸다. 최고위원들에 이어 홍 시장까지 윤리위 징계를 피하지 못하자 국민의힘을 이끄는 김기현 대표의 ‘징계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윤리위는 명목상 독립 기구지만 당 대표의 의지와 완전히 무관하게 움직이진 않는다는 게 당 안팎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3ㆍ8 전당대회로 당선한 김 대표는 그간 리더십에 의문 부호가 따라 다녔다. 전당대회 초반 한 자릿수 지지율을 보였던 그가 친윤계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당선되면서 ‘친윤계에 빚진 대표’라는 인식이 생기는 건 불가피했다. 또 지도부 출범 직후엔 김재원·태영호 당시 최고위원이 잇따라 설화를 일으키며 대표의 영(令)이 서지 않았다. 이 시기 각종 여론조사에선 국민의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에 속속 역전당했다.
그랬던 김 대표가 리더십 확립을 위해 꺼낸 건 윤리위였다. 지난 4월 17일 사법연수원 15기 동기인 황정근 변호사를 신임 위원장으로 임명했고, 황 위원장은 곧바로 새 윤리위원단을 꾸려 징계 논의에 착수했다. 그 결과 5월 10일 김 최고위원은 내년 4월 총선 출마 길이 막힌 ‘당원권 정지 1년’, 윤리위 회의 직전 사퇴한 태 전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3개월’ 처분을 받게 됐다.
지난 26일 윤리위가 홍 시장에 내린 중징계 역시 김 대표가 진상 조사를 지시(지난 18일)한 지 불과 8일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결정이다. 홍 시장은 “발언권은 정지되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당내에선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 당무에 관한 홍 시장 손발이 묶인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홍 시장 징계를 놓고는 당 내에서 “월척을 낚았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홍카콜라(홍준표+코카콜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톡 쏘고 시원한 발언이 홍 시장의 트레이드마크다.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쏘아대기 때문에 당내엔 홍 시장을 껄끄러워하는 이들이 꽤 많다. 영남의 한 의원은 “홍 시장은 말싸움에 능하고 대중적 인기도 많아서, 공격이 들어오면 그냥 피해버리는 정치인이 많다”고 말했다.
김 대표 역시 홍 시장에게 거센 비판 세례를 받은 인물 중 한명이다. 2011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체제에서 대변인으로 발탁돼 오랜 기간 가까이 지냈지만, 당 대표가 된 뒤엔 전광훈 목사 문제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홍 시장이 김 대표에게 “비상대책위 체제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라거나 “옹졸한 정치를 끝내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수해 골프 논란 직후 진상조사를 지시하면서 이튿날 홍 시장의 사과 기자회견을 끌어냈다. 이틀 전(지난 17일)까지만 해도 “트집잡혔다고 내가 잘못했다 할 사람이냐”던 홍 시장이 몸을 낮추자 당내에선 “이렇게까지 고개 숙인 홍준표는 처음 본다”(김성태 당 중앙위 의장)는 반응도 나왔다.
그래서 여권에선 이번 징계로 김 대표의 입지가 넓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홍 시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대통령실의 가려운 등을 김 대표가 긁어준 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엔 빈번한 징계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원한 당 관계자는 “징계로 할 수 있는 정치엔 한계가 있다”며 “당 대표로서 새로운 의제를 만들고 정국을 이끄는 모습이 있어야 진짜 리더십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