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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시시각각

신임 선관위 사무총장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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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외부 인사로는 35년 만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사무처 수장이 된 김용빈 사무총장이 26일 취임했다. 판사 출신인 김 총장 임명은 ‘복마전’으로 전락한 선관위의 환골탈태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평가된다. 선관위는 지난해 대선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기는 등 이해하기 힘든 부실 관리로 도마에 올랐다. 또 지난해 3월 김세환 당시 사무총장이 자녀 특혜채용 의혹으로 물러난 데 이어 후임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마저 14개월 만에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드러나면서 동반 사퇴했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독립성’을 방패로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해 국민적 공분을 산 만큼 외부 출신 사무총장 임명은 불가피한 귀결이다.

‘복마전’ 개혁 위해 불가피한 인사
‘대통령 동기’ 논란, 처신 엄정해야
불신 받는 사전투표, 축소가 마땅

선관위는 직원이 3000명에 달하는 방대한 조직이다. 게다가 수사기관급의 막강한 단속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기관의 수장을 대법원장이 지목한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맡으면서 관료주의와 폐쇄주의가 만연했다. 인사와 업무를 직업 공무원 조직인 사무처가 좌지우지하면서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고위직 고용 세습 사태도 꼬리 자르기식 사퇴와 자체 조사로 뭉개려다 여론의 철퇴를 맞고 뒤늦게 감사원 감사를 수용했지 않았나.

그런 만큼 김 신임 사무총장은 선관위의 방만한 조직과 폐쇄적 운영에 일대 수술을 가함은 물론, 정치적 중립을 위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선관위 상임위원에 민주당 대선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씨를 임명했고, 그의 상임위원 임기가 끝났는데도 사표를 반려하는 ‘인사 꼼수’를 부리다 내부 반발로 포기했다. 노정희(전)·노태악(현) 선관위원장도 모두 친야 성향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들이고, 선관위원도 8명 중 5명이 문 정권과 김 대법원장이 추천한 인사들이다. 이러니 선관위의 중립성이 늘 의심을 받고, 선거 때마다 편파 관리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 아닌가.

김 총장도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란 점에서 중립성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 매지 않는 엄정한 처신이 절실하다. 특히 내년 총선은 초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만큼 어느 때보다 공정한 선거 관리가 요구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김 총장의 중대한 임무가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에 대한 불신과 논란의 핵심인 사전투표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이미 선관위 안팎에선 현행 이틀인 사전투표 기간을 하루로 줄이거나, 투표 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전투표는 사전투표 종료 이후 본 투표일까지 사흘 동안 선거판의 변화를 투표에 반영할 수 없다는 결정적 문제를 안고 있다. 투표율도 쟁점이다. 사전투표율은 처음 도입된 2013년 재·보궐 선거에서 6.93%를 기록한 이후 매년 상승해 지난해 대선에선 36.9%에 달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사전투표율이 본 투표율을 추월해 사전투표가 본 투표를 대체하는 ‘본말전도’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투표자 성향도 사전투표와 본 투표가 확연히 달라 결과가 반대로 나오기 일쑤다. 선관위 안팎에서 사전투표 기간을 하루로 단축해 투표율을 30% 선에서 관리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이유다. 아예 사전투표를 폐지하고, 본 투표 시간을 늘리는 방안도 거론되는데 긍정적 반응이 많다고 한다.

물론 사전투표는 투표율을 늘리는 효과는 있다. 그러나 투표율이 느는 긍정적 효과보다 선거 불신과 국론 분열을 초래하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지적은 무시하기 힘든 설득력을 갖는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이긴다면 야권 단체들이, 야당이 이긴다면 여권 단체들이 사전투표 부정론을 주장하며 불복했던 3년 전 총선의 악몽을 재연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사전투표가 선거 결과를 승복하지 않는 세력의 ‘부정선거’ 프레임 도구로 전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서글픈 현실을 선관위는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