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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아파트’ 입주자 또 울린 현산의 ‘꼼수 철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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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최경호 광주총국장

“(광주) 화정동의 8개 동(棟) 모두를 철거하고 새로 아이파크를 짓겠습니다.”

지난해 5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그룹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는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114일 만에 “(단지 전체를) 모두 철거하겠다”고 했다. 23~39층이 무너져 6명이 숨진 건물을 포함해 8개 동을 다시 짓겠다는 의미였다.

앞서 정 회장은 참사 엿새 후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도 전면 철거에 대한 뜻을 내비쳤다. “안전점검 결과 문제가 있다면 완전 철거 후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후 정 회장은 입주예정자들의 재시공 요구를 받아들여 전면 해체를 약속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라는 뜻도 밝혔다.

지난해 1월 11일 23~39층 내·외부 구조물이 붕괴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해 1월 11일 23~39층 내·외부 구조물이 붕괴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현장. 프리랜서 장정필

‘현산 환골탈태’까지 거론했던 약속은 1년 2개월 만에 빛이 바랬다. 현산이 지난 11일 해체계획 설명회에서 일부 층을 제외한 철거 계획을 밝히면서다. 이미 완공된 8개 동의 상가층(1~3층)은 남기고 4층 이상만 철거한다는 취지였다.

소식을 접한 입주예정자들은 분노했다. “단지 전체가 새로 지어질 것”이라던 기대감도 무너졌다. 이들은 “전면 철거라고 해놓고 1~3층은 남긴다는 게 무슨 말이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비를 아끼려고 꼼수 철거를 한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이들의 불만은 이틀 후 입주예정자 설명회에서 봇물처럼 터졌다. “대기업이 ‘전면’이라는 뜻도 모르느냐?” “3층 윗부분은 새로 지어 붙이겠다는 것이냐” 등의 원성이 쏟아졌다. “현산이 부실공사를 해놓고 뒤통수를 친다”는 말도 나왔다.

설명회에선 해체 계획을 승인한 광주 서구청의 책임론도 불거졌다. 현산의 ‘부분 철거’ 계획을 지난해 10월 전달받았으면서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산과 서구청이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결국 현산은 “상가동 철거를 검토한 후 이른 시일 내에 알려드리겠다”며 설명회를 마쳤다.

이번 논란을 지켜본 이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 있다. “현산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라는 비판이다. 아파트 붕괴사고 7개월 전 광주에서 발생한 학동 재개발현장 붕괴사고를 떠올리는 목소리도 컸다.

학동 참사는 2021년 6월 9일 재개발 현장에서 5층 건물이 무너져 17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다. 두 건의 붕괴사고 후 당시 이용섭 광주시장은 “(현산은) 신뢰하기 어려운 참 나쁜 기업”이라고 쏘아붙였다.

현산 측의 추가 결정을 기다리는 입주예정자들의 요구는 확고하다. 정 회장의 약속대로 1층부터 전면 철거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산은 지금이라도 이들의 기대에 맞는 응답을 해야 한다. 건물이 무너졌다고 기업의 신뢰마저 무너뜨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