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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한반도 평화보다 불안정을 더 원하는 이유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행세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핵무력 정책법’을 제정한 이후부터 점점 공세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김정은은 지난해 처음 공개한 전술핵운용부대에서 모의핵탄두 발사훈련을 직접 지도(지난해 9월 25일~10월 9일)하고, 올 3월에는 급기야 전술핵탄두(화산-31형)까지를 직접 공개함으로써 대남 핵공격 능력을 먼저 보여줬다. 이어서 화성-18형 고체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최초로 공개(올 2월 8일)하고, 두 차례(4, 7월)에 걸친 시험발사에도 성공하는 수순을 밟음으로써 이제 대미 핵공격 능력도 보여준 셈이다.

북한은 지난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의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연합

북한은 지난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신형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의 시험발사를 감행했다. 연합

최근에는 김여정이 두 차례의 담화를 통해 합법적으로 비행 중인 미 정찰기에 대해 자신들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상공을 침범했다면서 이를 명분으로 화성-18형 고체추진 ICBM을 발사했다. 북한의 전형적인 책임전가식 술책이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ICBM 발사를 우려하자 또다시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미국 때문에 ‘핵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현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적실한 방도는 힘의 지위에서 충분한 실력 행사로 그들의 강권과 전횡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결국 핵보유국 지위에서 핵무기를 이용한 대응방식을 달리 할 것이라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20일에는 국방상 강순남을 앞세운 담화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전략핵잠수함(SSBN)의 부산항 기항을 빌미로 자신들의 핵무력 정책법에 명기한 ‘핵무기사용조건’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른바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사용을 억제ㆍ격퇴하기 위한 핵대응 공격태세’를 수행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마치 한미의 NCG 가동과 SSBN의 전개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김여정과 국방상의 연이은 담화는 이미 계획된 수순이었다. 김정은이 완성한 핵무기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구 힘을 이미 작동시키고 있다는 조짐들이기도 하다.

혹자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아직도 실전에 배치하기 이전의 단계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실존하는 북핵미사일 위협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심각하게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미국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국(ODNI)은 지난 6월 22일 ‘북한: 2030년까지 핵무기 활용 시나리오’라는 제목의 ‘국가정보평가’(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에서 김정은이 강압의 목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강압(coercion)이란 북한이 핵무기 사용 위협으로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의 제재를 약화시키고 북한의 비핵화를 불가역적으로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핵보유국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의미한다.

북한이 지난 3월 공개한 전술핵탄두 ‘화산-31’에는 일련번호(원 안)가 적혀 있어 해당 무기가 실제 운용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연합

북한이 지난 3월 공개한 전술핵탄두 ‘화산-31’에는 일련번호(원 안)가 적혀 있어 해당 무기가 실제 운용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연합

가장 최근인 7월 22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은 북한의 핵ㆍ미사일에 대해 “위협이 매우 현실적”이라며 “한반도는 세계에서 항상 높은 즉각적인 대응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곳 중 하나이며, 상황에 따라 며칠 내에 전쟁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최고정보기관과 미군 최고수뇌부가 북핵미사일 위협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실전에서 운용할 수 있는 실존위협을 암시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밀리 합참의장이 “김정은이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라고 언급한 점에도 주목하고자 한다. 북한 체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된 체제이자, 유일무이한 3대 세습체제다. 핵무기를 사용하기 위한 의사결정체계도 가장 독단적인 독재 시스템이다. 합리적·이성적 사고체계도 아니다. 그래서 핵무기를 가진 국가 중 가장 오판 가능성이 높은 정권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이유다.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제로(Zero)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세습독재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주애의 등장도 핵무기까지 세습하겠다는 의도다. 김정은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보다 불안정을 더 원한다. 소위 외부(한ㆍ미)의 위협을 명분으로 체제생존과 세습유지를 위한 내부결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핵무기는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로 더욱 강력하게 억제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월 26일 한미정상의 ‘워싱턴 선언’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안정ㆍ불안정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에 의하면, 핵무기를 거머쥔 김정은은 핵무기 보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ㆍ미와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자신들의 핵무기를 뒷배로 하는 선(先)대남 군사도발 후(後)대미 핵확전 위협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 생각할 것이다. 대남 재래식 군사도발로 한반도를 먼저 긴장시켜 불안정하게 만들면 이른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희망하는 주변국들이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북한식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12일 화성-18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김정은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

지난12일 화성-18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하자 김정은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

향후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은 북한의 대남 핵공격뿐만이 아니라 핵무기를 뒷배로 하는 대남 재래식 도발까지 억제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또 하나는 대남 군사도발에 대비한 한국군의 정교한 대비태세와 핵무기급 대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김정은 세습체제가 가장 아파하는 아킬레스건이 될 전략적 중심(重心ㆍcenter of gravity)을 잘 찾아내 이를 압박점(pressure-points)으로 하는 고도의 심리전과 정보 유입으로 김정은의 핵무기 사용 유혹을 상쇄하는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제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는 물론 우리 국민의 통합된 힘을 더하여 핵을 가진 북한의 재래식 도발까지도 억제하고 대비해야 할 시기임을 공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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