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안경·모자 갖고와" 은밀한 제안…요양사 자격증 50만원 장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금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기 딱 좋은 시기에요. 마침 감사도 안 나오거든요.”

지난 5월 A씨는 상담을 받기 위해 경기도 안산의 B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방문했다가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생업이 있는 A씨가 “매일 출석이 어려울 것 같다”며 망설이자 교육원 원장과 직원은 “일단 주간반에 등록하고 출석은 편한 대로 하면 된다”고 꼬드겼다. 그러면서 “지자체에 보고할 사진을 한꺼번에 찍는 날이 있다”며 “변신이 필요하니 안경이든 모자든 갖고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일부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출석부를 위조하는 등 수법을 통해 '수료증 장사'를 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일부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출석부를 위조하는 등 수법을 통해 '수료증 장사'를 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 A씨는 총 4번 8시간만 수업을 듣고 지난달 ‘요양보호사 교육수료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A씨가 받은 수료증의 대가는 50만원이었다. 주간반의 기수 당 정원은 40명으로 교육원은 2000만원의 수익을 챙긴 셈이다. A씨는 “교육원과 학생 모두 편하게 결과물을 얻고 싶은 심리가 있기 때문에 불법 시장이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 구멍이 뚫려 있다. 원래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려면 지자체 인가를 받은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240시간의 이론과 실습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 자격 시험을 볼 자격이 생긴다. 주간반의 경우 주 6일 오전 9시~오후 5시 10분까지 총 8시간씩 30일 동안 꼬박 출석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교육원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버젓이 ‘수료증 장사’를 하고 있었다. 실제 지난해 경상남도는 출석부를 위조한 도내 요양보호사 교육원 25곳을 적발해 지정취소 행정처분을 내리고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경찰에 넘기기도 했다.

지난 6월 A씨가 경기도 안산의 A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발급 받은 수료증. A씨는 50만원을 내고 총 4번 8시간만 출석한 뒤 이를 받을 수 있었다. A씨 제공

지난 6월 A씨가 경기도 안산의 A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발급 받은 수료증. A씨는 50만원을 내고 총 4번 8시간만 출석한 뒤 이를 받을 수 있었다. A씨 제공

 정부의 감시가 없지는 않다. 교육원의 지도·점검을 맡는 지자체는 불시에 방문해 출석부 확인하는 등 감사를 벌인다. 하지만 작정하고 속이는 업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영상에서 B 교육원 원장은 A씨에게 대리 서명한 출석부를 보여주면서 “누가 물어보거든 본인 글씨가 맞다 하라”며 감시를 따돌릴 방법을 알려줬다. 또 강사와 수강생들은 미리 준비한 여벌옷을 갈아입고 좌석을 옮겨가며 지자체에 보고할 ‘가짜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B 교육원 원장은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은 내가 맞다”면서도 “일부 출석부 허위기재는 수강생이 원해서 한 것이고 전부를 고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출석사진 허위보고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경기도청 어르신복지과 관계자는 “해당 교육원이 문제 소지가 있다고 보고 심층 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10년 넘게 요양보호사 교육원을 운영해온 박모(58)씨는 “일부 교육원들의 편법 운영이 요양보호사의 질이 갈수록 낮아지는 이유”라며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일수록 현업에서 사고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엔 경기 파주의 한 요양원에선 요양보호사가 80대 알츠하이머 환자를 폭행해 숨지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 요양보호사가 알츠하이머를 앓는 80대 노인을 폭행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중앙포토

지난 2월 요양보호사가 알츠하이머를 앓는 80대 노인을 폭행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중앙포토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 과정에도 ‘가짜 실습’이 만연하다고 한다. 실습 기관과 수강생이 짬짜미로 수기 출석부를 위조해 실습 시간을 채우는 방식은 요양보호사 교육원과 똑 닮았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전자출결 시스템을 도입해 부정행위를 막아야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요지부동이다. 보건복지부 ‘요양보호사 양성지침’에 따르면, 지문 인식기 등 전자시스템을 활용해 교육생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서울시 등 대부분 지자체는 여전히 수기 출석부를 사용한다. 서울시 어르신복지과 관계자는 “관련 예산이 ‘0’원이고 인력도 한 명뿐이라 전자시스템 구축은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직업훈련 과정에서 전자출결 시스템을 일찍이 도입해 부정행위를 막고 있다. 고용노동부 인적자원개발과 관계자는 “위도와 경도가 확인되는 QR코드 인증을 2015년 도입하고 5m 거리에서만 작동하는 ‘비컨’으로 출석 인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