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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신림역 ‘묻지마 살인범’에게 17차례 교화 기회 있었다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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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신림동 칼부림’ 피의자 조모씨가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조씨는 지난 21일 오후 2시7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 상가 골목에서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2023.7.23/뉴스1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신림동 칼부림’ 피의자 조모씨가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조씨는 지난 21일 오후 2시7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 상가 골목에서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0대 남성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2023.7.23/뉴스1

대낮 무차별 행인 공격 영상 퍼지며 공포심 번져

잇따르는 엽기 살인 차단할 교정행정 개선 절실

서울 번화가에서 대낮에 ‘묻지마 살인’이 벌어져 시민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 최근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엽기적 살인범죄가 잇따르면서 우리 사회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지난 21일 오후 2시7분쯤 서울 관악구 지하철 신림역 인근 상가에서 조모(33)씨가 행인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20대 남성 한 명을 살해하고 세 명을 다치게 한 사건은 인근 CCTV에 녹화된 끔찍한 범행 장면이 퍼지면서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조씨는 어제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범행 이유에 대해 “제 모든 게 예전부터 너무 안 좋은 상황이 있던 것 같다”며 “저는 그냥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앞서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분노에 가득 차 범행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기가 막히지만, 문제는 같은 유형의 비극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부산에서 “범죄물에 심취한 끝에 누군가를 해쳐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며 또래 과외 교사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23)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2018년 10월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김성수(34) 사건도 흡사하다. 이런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강력한 대책이 논의됐지만 결국 유사 범죄를 막지 못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피의자 조씨는 폭행 등 전과가 3범이며, 그에 앞서 법원 소년부로 14차례 송치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에게서 위험 징후가 17차례나 수사 당국에 포착됐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17번의 교정 기회가 있었는데도 이를 살리지 못했다. 2019년 경남 진주에서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로 이웃 5명을 살해한 안인득의 경우도 충남 공주치료감호소에서 ‘편집형 정신분열증(조현병)’ 진단을 받아 관리가 필요했지만 방치된 끝에 최악의 참극으로 이어졌다. 잇따르는 ‘묻지마 범죄’의 심각한 양상을 고려할 때 소년범 교화를 포함한 범죄 예방 강화가 절실하다. 그제 신림역 사건 현장을 방문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촉법소년 기준을 만 13세로 낮추는 등 소년범죄 대책을 발표했다. 처벌 강화가 능사인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국이 17차례나 적발하고도 흉악범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차단하지 못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 치료감호의 허점도 마찬가지다. ‘묻지마 살인’을 전부 막진 못하더라도 사전 예방이 가능한 사안부터 차단해 나가야 시민들의 불안을 줄일 수 있다. 당장은 모방 범죄를 막는 게 시급하다. 강서구 PC방 살해 사건의 경우 2년 뒤 관악구 PC방에서 모방 범죄가 발생했음을 상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