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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365일 '온콜'…소아과 탈출 러시에도 환자 지키는 의사

중앙일보

입력

임연정 충남대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 교수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성식 기자

임연정 충남대병원 소아혈액종양내과 교수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성식 기자

“병원에 두고 온 환자가 걱정돼 눈물이 납니다.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아암 전문 교수가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이날 ‘소아청소년암 필수진료체계 구축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충남대병원 소아혈액종양분과 임연정(48) 교수는 부산에서 온 소아암 환자의 어머니 호소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토론을 시작했다. 토론회는 국민의힘 서정숙·김미애·이종성·최재형 의원이 주최했다.

임 교수가 걱정한 환자는 16개월 된 급성골수성백혈병 아이다.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14일 이 아이에게 의사 7명이 달라붙었다고 한다. 항문 주변의 염증이 커져서 혹시 패혈증으로 번질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임 교수를 비롯해 감염·소아외과·성형외과·입원전담전문의 등이 매달렸고, 다행히 아이의 상태가 호전됐다고 한다.

임 교수는 지난해 11월부터 혼자서 소아암 환자를 돌본다. 전공의 4년 차 3명이 수련을 마치면서 전공의가 사라졌다. 오래전부터 전임의(펠로)도 없다. 10여년 동안 충남대병원 소아혈액종양분과를 지켰다. 전문의 한 명을 키우려 했으나 서울의 큰 병원으로 뽑혀갔다. 입원환자를 돌보는 전담 전문의 1명이 있지만, 낮에만 근무한다.

소아청소년과 다른 전공 교수들과 번갈아 가면서 주 1회 당직을 선다. 6~7명의 소아암 환자가 입원해 있는데, 성인 암 환자와 달리 응급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심 정지나 패혈증 쇼크 등의 위급 상황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다른 소아청소년과 전공 교수가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임 교수는 24시간 365일 항상 전화 대기(온콜) 상태로 산다. 한밤중에 전화가 오면 처치법을 지시한다. 상황이 급하면 병원으로 달려나간다. 주말에도 회진한다. 아이들의 부모는 임 교수가 없으면 불안한지 “교수님 또 언제 오나요”라고 묻는다.

임 교수는 서울의 친정 부모 얼굴을 본 지 오래다. 명절에도 못 간다. 휴가는 엄두를 못 낸다. 19, 20일 이틀 용케 쉬었다. 며칠 더 쉬기로 돼 있지만, 아이들 상태가 맘이 놓이지 않아 이틀 쉬다 멈췄다. 휴가 때도 병원 전화를 계속 받았다. 학회는 평일 낮에만 간다.

임 교수를 더 힘들게 하는 게 있다. 충남대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환자를 서울로 보내는 것이다. 16개월 된 아이도 건양대-충북대를 거쳐 충남대 임 교수한테 왔다.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이 필요한데, 아이의 몸무게가 얼마 안 되는 점 등이 우려돼 서울에서 수술할 것을 권했다. 부모는 아이의 쌍둥이 동생을 돌봐야 하는 등 형편이 여의치 않아 충남대를 떠나길 원하지 않았다. 임 교수는 “서울로 가는 게 아이에게 좋을 것 같다”고 부모에게 권했다.

아이 부모는 “서울 어디로 가야 하나요” “서울에 집을 얻어야 하나요” “큰 치료가 끝나면 충남대로 와도 되나요” 등을 임 교수에게 물었다. 부모가 기댈 데는 임 교수밖에 없다. 임 교수는 “부모에게 조언할 사람이 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임 교수는 “여기서(충남대병원) 치료받기를 원하는 애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리하려면 간호사·인턴·전공의 등이 필요하다. 나 혼자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소아암 환자는 병원에서도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중환자를 진료할수록 적자가 쌓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사를 적극적으로 뽑아줄 이유도 없다.

토론회 이후 임 교수에게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이 대학병원 탈출 러시라는데, 왜 힘들게 사느냐”라고 물었다.

“내가 떠나면 다른 의사가 오려고 할까요. 아이 돌보는 게 너무 좋아요. 애들을 두고는 못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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