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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 싶을 때, 누군가 내손 잡아줬다"…'오송 의인' 살린 의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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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송 지하차도 침수당시 여성 2명을 구한 정영석 증평군 하수토팀장 손. 사진 정영석씨

지난 15일 오송 지하차도 침수당시 여성 2명을 구한 정영석 증평군 하수토팀장 손. 사진 정영석씨

“몇분 만에 지하에 물 차 올라” 사고 직감 

“온몸에 힘이 빠져서 ‘죽겠다’ 싶었을 때 누군가 제 손을 잡았어요.”
‘오송 참사 의인(義人)’으로 불리는 정영석(45)씨가 21일 자신을 구해 준 화물차 운전사 유병조(44)씨를 "진짜 의인”이라고 치켜세우며 한 말이다. 정씨는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 지하차도 침수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생존자 9명 중 한 명이다.

충북 증평군 하수도팀장인 정씨는 사고 당시 여성 2명을 구했다. 침수한 747번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과 정씨와 함께 지하차도에 고립됐다가 200여 m를 헤치고 나온 여성이다. 정씨는 “오송 침수 사고 같은 위급한 상황에선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면서 “그 순간을 생각하면 숨이 안 쉬어지고, 아직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난 15일 오전 8시35분쯤 티볼리 승용차를 몰고 궁평2 지하차도로 진입했다가 고립됐다. 이날 폭우로 인해 군청에서 비상근무 명령이 내려지면서 관내 하수도시설 등을 점검하러 가던 길이었다. 정씨는 “지하차도에 진입했을 때 자동차 앞바퀴 반 정도로 물이 찼는데 터널 200여m를 지날 즈음 멈춰섰다”며 “시동은 살아있었지만,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물이 더 차오를 줄 모르고 ‘차를 어떻게 고칠까’란 생각만 했다”고 했다.

지난 15일 오송 지하차도 침수당시 여성 2명을 구한 충북 증평군 하수토팀장 정영석씨. 사진 정영석

지난 15일 오송 지하차도 침수당시 여성 2명을 구한 충북 증평군 하수토팀장 정영석씨. 사진 정영석

전등 구조물 잡고 터널 안 200m 이동 

궁평2 지하차도엔 배수펌프 4개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배전반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작동하지 않았다. 정씨는 “맡은 업무가 시설물 관리라 당연히 배수펌프가 작동할 거로 봤는데 물이 삽시간에 밀려들어 오는 걸 보고 ‘큰일이 났구나’ 싶었다”고 했다.

물이 차오르자 불과 몇분 만에 차가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정씨는 “창문을 내리고 차에서 내렸을 땐 이미 내 허리춤까지 물이 차 있었다”며 “차도 오른쪽에 있는 20㎝ 높이 경계석 밟고, 게걸음으로 벽에 붙어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정씨가 탈출을 시도할 때쯤 여성 1명과 남성 2명도 차에서 나와 터널 밖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10m를 이동했을 때 앞에서 ‘못 온다’ ‘물살이 너무 세다’란 비명이 들렸다. 정씨를 포함한 4명은 급격히 유입한 물에 휩쓸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물은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정씨는 “그때부터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 차가 있는 곳으로 몇m 헤엄쳐 지붕으로 올라갔다. 부력으로 차가 물 위에 뜨면 구조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차 밑에선 앞서 나가던 여성이 물에서 허우적대며 “살라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남성 2명은 여러 차례 미끄러진 끝에 차 지붕에 겨우 올라왔다고 한다. 정씨는 “물에 빠진 여성 한 분을 내 차 위로 올린 뒤 에어포켓이 있나 하고 봤더니 그럴 만한 공간이 없었다”며 “천장에서 50㎝를 남겨두고 물이 찼을 때, 기적처럼 천장 구석에 설치된 전등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차량 침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 사고현장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실종자 수색과 배수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차량 침수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2지하차도 사고현장에서 군과 소방당국이 실종자 수색과 배수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구조된 여성에 “잘 살아줘서 고맙다” 인사 

지하차도 안에 설치된 전등은 철제 레일로 된 구조물로 서로 연결돼 있었다. 이 구조물이 차도 끝까지 죽 나있는 게 보였다. 정씨는 “나와 일행 3명이 레일 형태로 된 전등 구조물을 양손으로 붙잡고, 벽을 발로 디딘 채 앞으로 나아갔다”며 “구조물 안에 전선도 연결돼 있어서 감전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정씨와 일행이 200여 m 이동했을 때 터널 끝이 보였다. 정씨는 “탈출하던 중 남성 1명이 물길에 휩쓸려 사라졌다”며 “지하차도 끝에 다다랐을 땐 고개를 뒤로 젖혀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는 중간에 흙탕물을 많이 먹고 물살이 세서 포기할까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터널 밖으로 나왔을 땐 온몸에 힘이 빠져 몸이 서서히 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정씨는 “몸도 안 움직이고 ‘이대로 죽나 보다’하고 있다가 물에 떠내려오는 스티로폼 조각을 잡았다”며 “이후 물에 둥둥 떠 있다가 난간에 매달려 있던 화물차 운전사가 내 손을 잡아 꺼내줬다”고 말했다.

정씨는 “747번 버스 운전사 도움으로 탈출한 뒤, 또다시 내 손을 잡고 가까스로 구조된 여성 승객에게 사흘 전(18일)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잘 살아줘서 고맙다.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자고 서로 얘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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