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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난 대응 총체적 부실…정부는 어디 있었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49호 30면

한 시간 넘게 계속된 다급한 요청에도 넋 놓은 대처

국조실, 112 신고 대응 관련 경찰관 6명 수사 의뢰

정부는 지난 정권 탓, 지자체 등은 서로 책임 미루기

차량 17대가 물에 갇혀 14명이 숨진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와 관련해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이한 대응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제 공개된 119 신고 전화 내용엔 희생자들이 겪었을 공포와 막막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사고가 난 15일 오전 7시 51분 14초에 ‘미호강 제방이 터져 물이 넘친다’는 신고부터 마지막 전화인 ‘지하차도가 잠겨 보트가 와야 돼요’(오전 9시 5분 57초)라는 내용까지 1시간 14분 동안 15건의 구조 요청이 잇따랐다. ‘물이 가득 차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도와주세요’ 등 안타까운 내용이다. 첫 신고 때 곧바로 현장에 나가 차량을 통제하고 구조에 나섰다면 많은 사람을 살렸을 것이다. 소방만 문제가 아니다.

경찰청은 지난 19일 이번 참사의 수사본부장을 교체했다. 경찰은 사고 당일 오전 7시 2분과 7시 58분에 112 신고가 접수됐는데도 안이한 대처로 참변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할 충북경찰청에 수사 지휘를 맡겼다. 이를 두고 비판이 나오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장으로 본부장을 바꾼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이태원 참사 당시 112 신고를 방치해 물의를 빚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감찰에 나선 국무조정실은 어제 경찰관 6명을 중대 과오와 허위 보고 등의 사유로 대검에 수사 의뢰했다.

관련 부처와 지자체가 묵살한 경고는 시민 신고만이 아니다. 참사 현장 부근 미호강에서 임시 제방 공사를 진행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지하차도 침수 전 충북도청과 경찰을 비롯한 관계 기관에 17번이나 위기 상황을 전파했다며 시간대별 통보 대상을 공개했다. 공사 현장 감리단장은 사고 직전 112상황실에 2차례 신고했고 청주시에도 4차례 상황을 알렸다고 밝혔다. 위급한 상태임을 분명히 인식했다는 증거다. 이 많은 경고가 쏟아지는 동안 물을 향해 가고 있는 시민들의 차량을 막기 위해 지하차도로 달려간 공무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 와중에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수해 실종자 수색작업에 나섰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실종자 시신을 찾으려 부대원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물로 들어갔다는데, 구명조끼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폭우가 내린 뒤의 하천은 수량 변동이 심해 구조 전문가도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데 관련 경험도 전문성도 없는 병사들에게 기본 안전 장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물 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문재인 정부를 탓한다. 한화진 장관과 임상준 차관은 “지난 정부에서 하천 정비사업이 거의 안 됐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뭘 했는가.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에 대한 경고가 몇 년 전부터 장마철마다 반복됐는데 이 시기에 허술하게 제방 공사를 하는 안전불감증은 또 어떤가.

참사 이후 각 기관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볼썽사나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속속 드러나는 사고 전후 상황과 각 기관의 대응을 고려할 때 치수 시스템과 재난 대응 체계를 수술하지 않고선 반복되는 재난을 막지 못한다. 지난해 경북 포항의 지하주차장과 서울 반지하 주택에서 일어난 참변이 올해 지하차도에서 재연됐는데 내년엔 어디가 터질지 모른다. 특단의 조치를 하지 않으면 시민의 구조 요청이 묵살되고 정부 기관은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급급한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정부가 강행한 ‘물 관리 일원화’ 체제부터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역할 분담까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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