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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항우에게 애첩이 끓여준 용봉탕 ‘패왕별희’ 별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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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호 24면

[왕사부의 중식만담] 인물에 얽힌 음식 많은 화중요리

중국 음식은 화중·화북·동남·서남 4개 지역으로 나눠 이해하는 편이 쉽다. 자연환경, 지리, 역사를 고려한 구분이다. 이번 호는 화중(華中)요리다. 장쑤·안후이·저장·장시·후베이·후난성과 상하이직할시 일대다. 장강, 즉 양쯔강 중하류지역으로 ‘대륙의 곡창’이다.

베이징과 항저우를 잇는 1750㎞ 징항대운하가 장쑤성을 통과한다. 운하를 따라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화이안~양저우 물길 절반 이상이 식당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출세하려면 과거를 보거나 칼을 잡아라’는 말처럼 예부터 요리사가 대접 받는 고장이다. 상하이·화이양요리를 양축으로 한다. 봉건시대 양저우는 양쯔강 물류 거점이었다. 저우언라이 총리의 고향이 화이안이다. 덕분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개국연회에서 화이양요리가 메인이었단다. 베이징오리가 대세지만 원조는 난징이다. 화이양요리가 북상하며 오리도 함께 갔다. 상하이는 양쯔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역이다. 난징보다 작은 도시였으나 서구 열강이 몰아닥치며 위상이 달라졌다. 음식도 그만큼 다채롭다. 민물털게찜인 대갑해(大閘蟹)는 중국인들이 일년 내내 기다리는 늦가을의 별미다. 상하이 옆 양청후(陽澄湖) 게를 최상품으로 친다. 부르는 게 값이라 다른 동네 게를 양청후에서 목욕시켜 ‘신분세탁’ 하는 일도 흔했다. 한국에서 흑산 홍어나 법성포 굴비가 대접 받는 이치와 같다.

돼지고기를 다져 완자로 만들었다. 본래 이름은 ‘규화참육’이지만 달걀지단을 썰어 고명으로 얹은 모습이 사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사자두’라고도 불린다. 3시간 넘게 찌고 졸여 만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돼지고기를 다져 완자로 만들었다. 본래 이름은 ‘규화참육’이지만 달걀지단을 썰어 고명으로 얹은 모습이 사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사자두’라고도 불린다. 3시간 넘게 찌고 졸여 만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양저우볶음밥(揚州炒飯)은 한국까지 평정했다. 중국 햄 화퇴(火腿)가 듬뿍 들어간다. 사자두(獅子頭)의 본명은 규화참육(葵花斬肉)이다. 다진 돼지고기로 만든 주먹만한 완자를 넣은 탕이다. 쪄서 소스를 얹고 상어지느러미나 달걀 지단을 채 썰어 장식한다. 이 모습이 사자 머리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피가 얇아 속이 보이는 소룡포(小籠包)는 상하이에서 퍼져나갔다. 대만 딘타이펑(鼎泰豐)이 그 전문점이다. 생전포(生煎包)는 한쪽만 구운 생만두다. 송서계어(松鼠桂魚)는 쏘가리(桂魚)를 저며 다람쥐(松鼠) 모양으로 튀긴 뒤 탕수양념을 한다. 문사두부(文思豆腐)는 두부를 국수처럼 썰어 만든다. 자라와 닭을 고아 만드는 용봉회(龍會)는 별명인 패왕별희(覇王別姬)로 더 알려져 있다. 항우가 유방에게 포위되어 곤경에 빠졌을 때 애첩인 우희가 만들어 준 요리란다. 자라는 패왕 항우를, 닭은 우희를 상징한다.

저장성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하늘엔 천당, 땅엔 쑤저우와 항저우(上有天堂 下有蘇杭)’라니 말이다. 양쯔강 중하류는 동파육(東坡肉)의 고장이다. 울진·영덕대게, 양양·봉화송이처럼 동네마다 원조를 놓고 다툰다. 본래는 삼겹살을 간장으로 붉게 졸여내는 홍소육(紅燒肉)이다. 소동파가 장쑤성 쉬저우(徐州), 후베이성 황저우((黄州), 저장성 항저우를 오가며 즐긴 터라 ‘쉬저우에서 만들고 황저우에서 다듬어 항저우에서 이름을 알린 요리’다. 홍수 관리를 잘한 고마움에 주민들이 바친 돼지고기를 요리해 나누며 동파육이란 이름을 얻었다. 산둥에서는 오화구육(五花扣肉) 또는 구육이라고 한다. 동파육은 네모로 큼직하게 썰어 실로 묶어 졸이고, 구육은 고기를 넓적하고 두툼한 편으로 썰어 조린다. 한국에서는 뒤늦게 떴다. 내가 젊어서 요리 배울 때만 해도 동파육은 들어보지 못했다. 1992년 한·중 수교 뒤에 알려지지 않았나 싶다. 서울에서는 목란(셰프 이연복)의 동파육이 이름났다.

규화계(叫花鷄)는 ‘거지(叫花)가 먹던 닭’이란 뜻이다. 거지들이 닭에 진흙을 발라 구워 먹었는데 건륭제가 맛보고 엄지 척한 뒤 출세했다. 용정하인(龍井蝦仁)은 새우에 용정 차를 넣어 만든다. 양저우 출신으로 상하이 인맥의 보스였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새콤달콤한 생선찜 서호초어(西湖醋魚)를 좋아했다. 장제스 총통은 대만으로 밀려난 뒤에도 고향인 저장 생선 요리를 잊지 못했다.

안후이성은 남부에 황산이 있고 북부는 양쯔강과 화이허(淮河)가 흐르는 평원이다. 삶고 찌고 끓이는 방식이 많고, 튀기고 볶는 요리는 적다. 황산돈합(黃山燉鴿)은 비둘기와 마를 삶아서 만든다. 청돈마제별(清燉馬蹄鱉)은 말발굽만 한 자라(馬蹄鱉)로 만든 백숙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장시성에는 인물에 얽힌 요리가 많다. 노표토계탕(老表土雞湯)은 포양호 전투를 치른 주원장이, 생선요리 사성망월(四星望月)은 국공내전 때 마오쩌둥이 이름 붙였다. 문산계정(文山雞丁)과 영화두부(永和豆腐)는 남송 재상 문천상과 인연이 있다. 파호반어두(鄱湖胖魚頭)는 중국 최대 호수인 포양호 생선으로 만드는 지역 대표요리다. 평향납육(萍鄉臘肉)은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훈제한 베이컨이다. 이를 이용해 삼겹살찜이나 죽순볶음을 한다. 쑥에 베이컨을 넣어 볶는 여호초석육(藜蒿炒腊肉)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메뉴 중 하나였다.

후베이성은 퉁팅호(洞庭湖·동정호) 북쪽 지역이다. 아홉 개 성이 통과하는 길목이라 구성통구(九省通衢)라 불린다. 한국으로 치면 대전이랄까. 그만큼 다양한 식재료가 모이지만 특색이 없다는 평도 있다. 비빔국수 일종인 열간면(熱幹面)과 생선찜 청증무창어(淸蒸武昌魚)의 고향이다. 박쥐·오소리·공작·사향고양이 같은 온갖 야생동물을 먹는 괴식으로 종종 뉴스에 오르내린다.

퉁팅호 남쪽 후난성은 매운 고장이다. ‘쓰촨 사람은 매운 걸 겁내지 않고, 후난 사람은 매워도 겁내는 법이 없고, 구이저우 사람은 맵지 않은 걸 겁낸다(四川人不怕辣 湖南人辣不怕 貴州人怕不辣)’ ‘고추 먹는 거로는 쓰촨 사람 열이 후난 사람 하나 못 당한다’는 말도 있다. 독한 동네들인데 그래도 최고 독종은 구이저우인 모양이다. 고추만 있어도 밥을 먹었다는 마오쩌둥이 후난 출신이다. 펑더화이·류샤오치·후야오방·주룽지처럼 격변기 대륙의 풍운아들 중엔 이곳 사람이 유독 많다. ‘형님 아우님’ ‘우리가 남이가’는 어디나 있다. 마오쩌둥이 즐긴 고향 요리(毛家菜)도 권력을 업고 중앙으로 진출했다. 한국에서 멸치·홍어·과메기가 한시절을 풍미한 것처럼. 향랄저수(香辣猪手)는 매콤한 족발요리다. 발효향 독특한 취두부(臭豆腐)는 청나라 말 서태후의 혀를 사로잡았다. 기름에 튀긴 검은 취두부는 장사 명물이다. 타랄어두(剁辣魚頭)는 머리가 두툼한 물고기 머리에 발효한 다진 고추(剁辣)를 넣어 찐다.

※정리: 안충기 기자

왕육성 중식당 ‘진진’ 셰프.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가진 중식 백전노장.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낸 서울 서교동의 작은 중식당 ‘진진’이 2016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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