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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요?" 순직 해병 부친, 숨기지 못한 비통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내성천 급류에 휩쓸려 숨진 해병대원이 20일 해군포항병원으로 이송된 가운데 해병대원들이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내성천 급류에 휩쓸려 숨진 해병대원이 20일 해군포항병원으로 이송된 가운데 해병대원들이 근조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다. 연합뉴스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싸요? 왜 안 입혔어요.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전북 남원에서 경북 예천까지 245㎞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 온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앞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예천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급류에 휘말린 해병대 채수근(20) 일병은 11일 밤 늦게 내성천 고령교 하류 400m 지점에서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20일 유가족과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전북 남원에서 나고 자란 채 일병은 전주에서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지난 5월 수료식을 마쳤다. 그는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으로 지난 19일 오전 전우들과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하루 전인 18일에도 호우 실종자 수색을 위해 해병대 1사단은 내성천 일대에 상륙돌격장갑차(KAAV)를 투입했는데, 5분여 만에 다시 뭍으로 올라와야 할 정도로  유속은 빠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채 일병과 동료들은 구명조끼 없이 '인간 띠'를 만들어 강바닥을 수색했고 사고가 발생했다.

20일 오전 0시 47분께 경북 예천스타디움에서 수색 중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해병 장병을 태운 헬기가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0시 47분께 경북 예천스타디움에서 수색 중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해병 장병을 태운 헬기가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들의 죽음 앞에 무너진 채 일병은 아버지가 결혼 10년차에 어렵게 얻은 외아들이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 채 일병의 아버지는 평생을 헌신한 소방관. 27년째 전북도 소방본부에서 근무 중이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그는 현재 남원 지역 안전센터에서 소방위로 일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사고 현장으로 달려온 부친은 실종 지점에서 해병대 중대장을 향해 원망을 쏟아냈다.

그는 "구명조끼 입혔어요? 입혔냐고. 왜 안 입혔냐고요. 왜. 그게 그렇게 비싸요"라고 반문했다가 "지금 세상에 물살이 이렇게 센 데,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죽겠네 정말. 기본도 안 지키니까"라고 격분했다. 곁에 있던 채 일병의 어머니도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외동아들이에요. 외동. 혼자 있어요. 혼자. 어떻게 살아. 어디예요? 못 찾았어요?"라며 절규했다. 부부와 친인척은 "구명조끼만 입혔어도…"라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비통함을 드러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부친은 아들과 지난 18일 마지막 2분의 전화 통화를 나눴다고 한다. "내가 걱정돼서 저녁에 전화했는데 어제. 2분 딱 통화를 했어. 물 조심하라고. 아이고 나 못 살겠네." 아버지는 미처 말을 맺지 못했다.

물 조심하라던 현직 소방대원인 아버지의 당부는 '아빠와 아들'의 마지막 통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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