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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산 1000t, 코 찌르는 악취…폭우 뒤 독박 쓴 서천 비명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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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9일 오후 1시 충남 서천군 서면 신합리(띠섬목) 백사장.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해변으로 내려가자 쓰레기 썩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좌우로 바라본 5㎞에 달하는 긴 백사장은 폭이 5~10m에 이르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다. 나뭇가지와 풀뿌리를 비롯해 플라스틱과 폐타이어에다 심지어는 동물 사체까지 나뒹굴었다. 바닷가 쪽으로 걸어가려면 쓰레기 더미를 넘어야 할 정도였다.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 신합리 백사장 5㎞ 구간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 신합리 백사장 5㎞ 구간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며칠간 내린 폭우로 전국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빗물에 휩쓸려 내려온 쓰레기로 충남 서해안이 몸살을 앓고 있다.

플라스틱·폐타이어에 동물 사체까지

쓰레기는 대부분 지난 주말 충청권에 내린 폭우에 휩쓸려 금강을 타고 내려온 것으로 파악됐다. 서천군은 며칠간 떠밀려온 쓰레기가 1000t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5㎞ 길이 백사장 전역에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자 주민들은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백사장 한쪽에는 폭우가 내리기 전에 수거한 쓰레기를 담은 대형 포댓자루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강한 바람과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 신합리 백사장 5㎞ 구간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 신합리 백사장 5㎞ 구간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백사장에서 만난 신합리 주민 조규직(75)씨는 “지난번에 담아 놓은 쓰레기 포대를 아직 치우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많은 걸 언제 다 치우냐”며 “여기보다 급한 곳이 많아서 아직 수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은 22일부터 다시 강한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이러다가 올여름이 다 지나간 뒤에나 치워지겠다”고 말했다.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치운다고 해도 밀물이 들어오면 모래 속에 파묻힌 쓰레기가 밖으로 튀어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두 번 수거로 끝날 수준의 양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백사장 5㎞ 구간 산더미…걷기도 어려워

신합리 백사장에서 5㎞쯤 떨어진 춘장대해수욕장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지난 8일 개장한 춘장대해수욕장에도 쓰레기 더미가 밀려왔지만, 서천군과 전문업체가 긴급 수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피서객은 “맨발로 백사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쓰레기가 있으면 아주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 신합리 백사장 5㎞ 구간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 신합리 백사장 5㎞ 구간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서천군 서면에서 남쪽으로 25㎞ 거리인 장항항은 사정이 더 심각했다. 금강하굿둑을 넘어 장항 앞바다로 밀려든 쓰레기로 배가 출항하지 못할 정도였다. 관계 당국과 어민이 바다에서 꺼낸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고 악취로 근처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지난 17~18일 긴급 수거 작업이 이뤄지면서 어선이 겨우 출항할 수 있었다.

금강에서 밀려온 쓰레기로 어선 출항도 못 해 

어민들은 “바다가 오염되는 것은 물론 포구를 덮친 쓰레기 때문에 조업에 나서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며 “쓰레기 속에 섞인 플라스틱과 밧줄이 스크루에 걸리면서 엔진이 파손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의 한 해변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19일 오후 충남 서천군 서면의 한 해변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진호 기자

서천군은 “비가 내릴 때마다 손해가 막대하다”고 하소연했다. 금강 하굿둑으로 밀려드는 쓰레기 처리는 고스란히 서천군 몫이다. 처리 비용 역시 서천군이 대부분 부담한다. 금강 상류인 대전과 세종·충남·전북 등에서 처리 분담금을 받고 있지만 몇백만원에 불과하다. 서천군은 이번 폭우로 쓸려온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5억원 이상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당장 시급한 예산 3억7000만원 역시 서천군 자체 예산이다.

쓰레기 처리비용 서천군이 부담…손해 막대

서천군 관계자는 “예산 문제부터 처리까지 모두 떠맡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며 “앞으로도 이런 일(폭우에 따른 쓰레기 유입)이 반복될 텐데 중앙정부나 다른 자치단체와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남 서천 장항항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가득 쌓여 어선이 출항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 서천군]

충남 서천 장항항에 폭우로 떠밀려온 쓰레기가 가득 쌓여 어선이 출항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 서천군]

한편 지난 13~18일 내린 비로 충남에서는 4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도로 247곳과 하천·제방 123곳이 유실되고 농업기반시설 124곳도 파손됐다. 농작물 침수 지역은 1만215ha, 가축 피해는 195만321마리(133개 농가)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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