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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품아'라더니, 분교라뇨"…서울 새 아파트 '분품아'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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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9일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3지구 초등학교 용지 주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장윤서 기자

19일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3지구 초등학교 용지 주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장윤서 기자

“‘초품아’일 줄 알고 왔는데, 분교(分校)라뇨….”

19일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은 분통을 터뜨렸다. 아파트 단지 안 부지에 초등학교가 지어져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가 될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의 분교가 들어설 수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2년 전 아파트 입주 때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초품아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지난 4월 시교육청이 분교 설립 카드를 꺼냈다고 한다.

교육 관련 법령에 ‘분교장(分校場)’으로 명시된 분교는 본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별도의 학교장을 두지 않고 운영하는 학교다. 이곳 주민 대표인 성제녕(52)씨는 “교육청은 저학년 때만 단지 내 분교에 다니다가 고학년이 되면 다른 학교에 전학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분교를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했다. 학교 신설 결정이 늦어지는 동안 이미 입주한 가구의 학생들은 약 2km 떨어진 초등학교에 다녔다. 아이들 걸음으로 30분 넘게 걸리기도 해서 셔틀버스 2대로 통학한다고 한다.

저출산과 재개발이 만든 ‘분품아’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10년대부터 부동산 업계의 화두 중 하나인 초품아는 학생들의 등하교 시 위험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거래가도 높게 형성됐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의 신축 아파트는 초품아 대신 ‘분품아(분교를 품은 아파트)’로 불릴 공산이 크다.

저출산이 이어져 새로운 초등학교를 만들기는 어려운 와중에 도시 재개발에 따라 갑작스러운 학생 증가 현상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서울 유·초·중·고 학생은 87만2864명으로 전년보다 2.5%(2만2597명) 줄었다. 폐교도 이어졌다. 홍일초(2015년), 염강초·공진중(2020년)에 이어 올해 화양초가 문을 닫았다. 반면, 재개발·재건축 지역에서는 학생 수가 늘어 과대 학교(학생 수 1500명 초과 초등학교)나 과밀학급(학급당 학생 수 28명 이상)이 등장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신설 수요와 학생 수 감소에 동시에 대응하기 위해 낸 아이디어가 ‘서울형 분교’다. 지난 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2030년에 초등학생은 지난 2012년 대비 약 50%까지 감소할 것”이라며 “인구 급감, 학생 수 감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형 분교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교가 대안?…갈등 또는 환영

지난 3월 폐교한 화양초등학교 정문. 장윤서 기자

지난 3월 폐교한 화양초등학교 정문. 장윤서 기자

서울형 분교는 크게 두 유형이 있다. 폐교 후 인근 학교로 흡수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통폐합형’,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학생 수가 늘어난 지역에 도입하는 ‘신설형’이다. 여기에 아파트 단지 내 시설에 초등학교 저학년만을 위한 공간을 두거나(주거용건물 연계형), 상급 학교와 일부 공간을 공동으로 활용하는 캠퍼스형, 소규모 미니학교 등 새로운 모델이 검토되고 있다.

첫 번째 서울형 분교 선정은 지역의 다양한 요구에 난항을 겪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 학교 부지가 확보돼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였던 고덕강일3지구는 지난 5월 주민 1300여명이 분교가 아닌 학교 신설을 요구하는 청원을 냈다. 분교가 초등학교보다 교육 여건이 나쁠 것이라는 걱정이 주된 이유다. 분교 운영에 대한 법령이나 가이드라인이 구체적이지 않아 혼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면, 서울 양천구 목3동은 분교 유치에 긍정적이지만, 학교 부지 마련이 어려운 처지다. 채수지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목3동에 초등학교가 없어서 학생들이 8차선 도로를 건너며 위험하게 등교하고 있다. 통학로 안전이 중요하니 오래 걸리는 학교 신설보단 분교에 긍정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학교 용지로 쓸) 부지 자체가 없다. 지역 교회에서 일부를 빌려줄 수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31개 과대 학교…“2035년 중장기 계획 수립”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교육청은 과대·과밀학급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들을 주요 분교 신설 장소로 검토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서울시교육청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소재 초·중·고 중 과대학교는 31개교(초등 17개교, 중·고등학교 14개교), 과밀학급은 4697학급(초등 1805학급, 중학교 1915학급, 고등학교 977학급)에 이른다.

7000여 세대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길음 재개발 지역,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 권역도 초등학교 증축 및 신설 요구가 잇따르는 지역이다. 보고서는 “서울 일부 지역의 대규모 공동주택 사업 추진 등으로 학생 수 증가에 따른 교육 여건 불균형 및 원거리 통학 문제 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학교 이전 등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워 분교장 신설형, 오피스·주거용 건물 연계 활용 유형, 미니학교 유형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변하는 인구 지도에 맞춰 서울시교육청은 2035년까지의 중장기 학교 재배치 계획을 마련 중이다. 지역별 학생 수 추이를 토대로 통폐합 학교를 미리 가려내고 이를 소규모 학교나 분교 등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지원청별 통폐합 위기 학교를 조사했다. 학교 재배치 계획을 포함한 분교 운영 계획을 빠르면 9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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