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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핵전력 운용 때 '한국 발언권 제도화' 첫발…파트너 인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8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핵전력 운용 및 확장억제 실행시 한국의 발언권을 사실상 제도화할 수 있는 첫 발을 뗐다는 의미가 있다. 그 간의 미국의 핵우산 공약 확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핵 전력 운용을 위한 협의체가 꾸려졌다는 게 미측의 평가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왼쪽)과 커트 캠벨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회의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밝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왼쪽)과 커트 캠벨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출범회의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밝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과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ㆍ태평양 조정관은 이날 NCG 첫 회의를 마친 뒤 공동 언론발표문을 통해 “NCG가 핵 및 전략기획과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응 관련 지침을 포함한 양자간 접근법을 논의하고 진전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차장은 “한국이 별도의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하고도 확실한 확장억제에 대한 확신이 오늘 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 차장이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소개한 NCG의 의제는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의 비핵 전력 지원을 위한 ▶공동 기획 ▶실행 ▶도상훈련과 시뮬레이션 등의 조율 및 이행이다. 유사시 미국이 확장억제 차원에서 핵 작전을 실행할 경우 한국이 재래식 지원을 하게 되는데, 공동으로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전술적 실행까지 양국이 함께 논의해 결정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를 위한 훈련 역시 핵 전략을 운용해본 적 없는 한국 군에 미국 군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견고하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한국이 수혜를 받는 식이다. 하지만 양국이 이날 밝힌대로라면 NCG를 통해 한국이 이런 일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 이날 회의에선 5가지 실행 분야가 눈에 띄었다. ▶기획 및 핵태세 검토 ▶미 핵자산과 한국의 비핵자산 연계 방안 ▶미 전략자산 한국 배치 ▶위기관리 계획 ▶작전과 훈련 공조 등 분야에서 한·미가 함께 협의해간다는 내용이다. 이는 지난 4월 워싱턴선언보다 구체화된 것이다.

기획 및 핵태세 검토의 경우 미국의 기존 핵전략에 대한 정보공유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핵전력 운용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로 작전, 훈련 등을 함께 만들어나기 위해 이는 필수적이다. 미국이 한국을 핵전력 운용의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 핵자산과 한국의 재래식 무기 등 비핵자산을 연계한다는 계획은 지금 작성되고 있는 새 작전계획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현재 한·미 사이에 분리된 핵과 재래식 전력의 역량을 어떻게 합칠지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라며 “현재 재래식 전력 위주로 꾸려진 양국 작계의 틀을 크게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 부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윤 대통령, 커트 캠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카라 아베크롬비 NSC 국방·군축 정책 조정관.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 부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윤 대통령, 커트 캠벨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카라 아베크롬비 NSC 국방·군축 정책 조정관. 대통령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비핵전력이 미 핵전력과 조화를 이루려면 핵 전력에 관한 양국간 정보 공유가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 핵전력의 상시적인 한반도 전개를 놓고서도 지금보다 사전 협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결정은 미국의 고유 권한인 이상 이런 조치들을 통해 미국의 한반도 핵 정책에 한국의 지분을 체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거론된 작전과 훈련 공조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김 차장은 “핵에 대한 전문성과 실전 능력을 한국이 보강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체계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핵 관련 장병과 전문가를 워싱턴에 파견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NCG 출범을 논의할 때부터 우리 인력이 미국의 핵전력 운용 경험을 습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데 양국 공감대가 형성돼있었다”고 말했다.

캠벨 조정관은 “NCG는 미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협의체”라며 “대규모 미 대표단이 핵억제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점검한 건 우리 의지가 말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미국이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국가 중 이같이 상세하게 핵전력 운용에 대해 양자간 협의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이 입항해 있다. SSBN이 한국에 기항한 것은 지난 1981년 3월 '로버트리함'(SSBN-601) 이후 42년 만이다. 뉴스1

18일 오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미국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이 입항해 있다. SSBN이 한국에 기항한 것은 지난 1981년 3월 '로버트리함'(SSBN-601) 이후 42년 만이다. 뉴스1

미국은 이날 NCG에 맞춰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을 부산작전기지에 입항시켰다. SSBN의 방한은 1981년 이후 약 42년 만이다. 오하이오급 잠수함에는 사거리 1만2000㎞의 핵탄두를 담은 트라이던트-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20여 기가 탑재 가능하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15㏏ 위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트라이던트-Ⅱ 1기당 5~7㏏의 저위력 핵탄두 W76-2가 실린다고 해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

한·미는 이날 들어온 켄터키함의 핵 탑재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인 핵능력을 과시하면서 대북 압박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박철균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안보전략센터장은 “작전 중이던 켄터키함에는 당연히 핵탄두 미사일이 탑재돼 있고 전략핵 외에 전술핵급 미사일이 일부 탑재됐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졌다”며 “이는 핵사용 ‘문턱’을 대폭 낮춰 북한이 핵 활용 의지를 꺾어놓으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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