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후쿠시마 오염수가 광우병처럼 안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편집인

고현곤 편집인

2008년 4월 말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는 최악이었다. 한미 쇠고기 협상과 시중 괴담을 교묘히 엮었다. 당시 광우병 담당 부장이었던 필자는 편집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기억이 있다. “미국인들은 피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먹고도 문제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무시해도 된다.” 경솔한 판단이었다. 말이 안 되는 건 맞는데, 무시할 건 아니었다.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두 달여 전국 곳곳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오염수와 한일관계 복원, 별개 문제
국민건강 이슈 쉽게 생각해선 안돼
횟집 먹방으로 야당 괴담 못 이겨
‘정부는 국민 편’ 신뢰 쌓는게 급선무

광우병 사태가 남긴 교훈이 있다.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 건강 이슈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다. 이명박 대통령의 첫 반응은 “광우병 우려해서 쇠고기를 못 먹는 국민이 어디 있느냐”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이었다. 하지만 광풍이 몰아치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여고생들이 ‘동방신기가 광우병에 걸린다’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어처구니없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두 달 후 이 대통령은 “시급한 현안이라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챙겨야 했다”고 통렬한 반성문을 읽어야 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의 얼개를 짠 건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다. 최종 타결을 차일피일 미루다 차기 정부에 떠넘겼다. 그걸 이 대통령이 덜컥 서명했다가 뒤집어썼다. 협상의 전후 사정을 잘 아는 노무현 정부 사람들은 촛불 집회가 들불처럼 번질 때 침묵했다. 수습은 이명박 정부의 몫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 뜻을 수렴하고, 신뢰를 쌓았으면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에서 광우병 사태가 오버랩된다. 일본 정부가 해양 방류를 확정한 건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4월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맞는 적합한 절차를 따른다면 굳이 반대할 건 없다”고 말했다. 다시 그런 말을 해줄 리 없다. 오롯이 윤석열 정부가 감당할 짐이 됐다. 어촌, 횟집 등 관계자가 많고, 피해도 늘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다. 거북하고 민감한 상대다. 서투르게 대처하면 후폭풍이 불가피한 구도다.

정부는 이미 몇 차례 실수를 했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달 “안전 기준에 맞는다면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고 말했다. 광우병 사태 때는 총리를 비롯해 각료들이 뒤에 숨는 바람에 일을 키웠다. 이번에 한 총리가 용감하게 총대를 멘 것까진 좋은데, 너무 나갔다. 일본 총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1차장은 “해양 방류 방식이 안정성을 고려했을 때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한 발언이다. IAEA 보고서도 안 나왔을 때였다.

오염수는 한일 관계 복원과 별개의 문제다. 전적으로 일본의 문제이고, 일본의 책임이다. 우리는 손톱만큼의 불안감도 없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할 입장이다. 우리가 공격이고, 일본이 수비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가 수비를 하는 듯하다. 한술 더 떠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을 요구했다. 이웃 국가를 난처하게 하는 처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방류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 전문가가 점검에 참여토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아직 이렇다 할 답변이 없다. 일본이 머뭇거리면 더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진보 진영이 이 틈을 놓칠 리 없다. 괴담을 쏟아낸다. 예전에 해온 대로다. 2002년 효순·미선양 사고를 계기로 반미를 부추겼다. 여세를 몰아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광우병·천안함 괴담으로 이명박 정부를 흔들었다. 사드 전자파 논란은 박근혜 정부에 흠집을 냈다. 이번에는 반일로 세력 결집을 꿈꾼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우물에 독극물 풀어넣기”라고 말했다. 정확한 실체를 모를 텐데, 사실인 듯 얘기했다. 책임 있는 정치 지도자의 자세는 아니다.

괴담은 전파력과 파괴력이 엄청나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강렬하다.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면 복잡한 과학적 설명이 필요하다. 바로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광우병 사태는 온 국민이 쇠고기 전문가가 되고 나서야 일단락됐다. 법원이 PD수첩의 다섯 쟁점 중 세 개가 허위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3년 넘게 흐른 뒤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다.

여당은 횟집 먹방으로 맞섰다.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미덥지 않은 정치인 쇼를 보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을까. 반감을 키울 뿐이다. 일본 원정 시위를 간 야당이나 오십보백보다. 광우병 사태 때처럼 괴담으로 치부하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오염수 방류가 ‘걱정된다’는 응답(한국갤럽)이 78%나 되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다른 나라는 조용한데 한국만 호들갑’ ‘괴담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식의 대응은 위험하다. 자칫 국민을 우매하게 여기거나 걱정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보여주기 이벤트나 여론몰이로는 괴담을 넘어설 수 없다. 괴담을 이기는 건 기본적으로 과학이다. 더 중요한 건 ‘정부는 국민 편’이라는 신뢰다. 이건 과학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다. 정권의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까다로운 싸움이 시작됐다.